“대학원 연구인력 모자라 베트남서 데려오는 현실”

  • 입력 2007년 2월 7일 02시 56분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채영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위기에 빠진 한국 과학교육을 살리기 위한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재명 기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채영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서 위기에 빠진 한국 과학교육을 살리기 위한 방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재명 기자
■윤종용 부회장-채영복 과기단체총연합회 회장 특별대담

《“인문계 출신 기업 최고경영자(CEO)도 과학적 소양이 없으면 제대로 일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미적분을 모르는 사람이 이공계 대학에 들어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채영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국 산업계와 과학계의 주요 리더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채영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이 한국 과학교육의 현실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윤 부회장은 “수학 과학 등 기초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인력은 창의력이 떨어져 기업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윤 부회장과 채 회장의 특별대담은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0층 회의실에서 정경준 본보 경제부 차장의 사회로 1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

―우리 과학 교육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채 회장=전체 학생의 40%가 이공계로 진학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은 부족한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미분 적분을 배우지 않고 이공계 대학에 오거나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화학과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별도 반을 편성해 기초 학업을 보충해 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대학원은 더 심각합니다. 과학 기초가 없는 학생이 대학원에 가겠습니까. 대학원 연구실에 인력이 부족해 교수들이 베트남이나 인도에 가 선물 공세를 펴면서 학생을 데려와야 하는 실정이에요.

▽윤 부회장=전자 전기 기계 등 공학 분야에서는 고도의 미적분이 필수입니다. 이를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오면 기초를 배우느라 4년을 허비하게 돼요. 기초를 쌓지 않으면 대학과 산업계에서 연구개발(R&D)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과학교육은 산업 발전과 긴밀히 연관돼 있고 이는 곧 나라의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채 회장=실기(實技)를 잘 못하면 미대나 음대에 갈 수 없습니다. 이공계도 그래야 합니다. 이공계 학생이 수학과 과학을 모르면 되겠습니까.

―우리 학생들은 국제 학력평가에서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이유가 뭔지요.

▽채 회장=국제학생성취도평가(PISA) 등 각국 학생들의 학력 테스트에서 중학교까지는 우리가 우수해요. 그러나 교과목 편식 현상이 나타나는 고등학교에선 상황이 바뀝니다.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물리Ⅱ로 시험을 친 학생은 전체의 3.3%에 그칠 정도니까요. 물론 소수의 엘리트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질이 저하돼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인문계 학생에게도 기본적인 과학 소양을 길러 줘야 해요.

▽윤 부회장=디지털 시대의 화두(話頭)인 ‘컨버전스(convergence·융합)’가 이제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어요. 의사도 영상기기를 보고 진단하며 비디오아트 같은 예술에서도 전자기기를 사용합니다. 특히 첨단산업을 이끄는 사람은 기술 변화를 이해해야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요. 인문계 출신도 기본적인 과학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형도 모르고 지도도 못 읽는 사람을 전쟁터에 지휘관으로 내보내는 격입니다.

―과학교육의 변화가 사회 발전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채 회장=18세기 후반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했어요. 당시 설립된 게 ‘파리공과대학’이에요. 이때부터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고급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해 지금의 프랑스 과학기술의 뿌리가 내렸습니다.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이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초중등 과학교육을 완전히 개편했습니다. 미국이 최고의 과학기술 강국이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윤 부회장=15, 16세기 세력 다툼을 벌이던 유럽 여러 나라도 점령국에서 기술자를 모아오는 데 열을 올렸어요. 일본은 19세기 중반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유학을 장려했고 해외에서 기술자도 많이 데려왔습니다. 과거에도 세계 각국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인재를 확보하려 노력했다는 겁니다. 과학을 소홀히 하는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곧 발표될 제7차 교육과정 개정안에서도 과학 수학 등 기초과목이 홀대받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개정안은 수학 과학을 기술 가정 등과 함께 ‘자연공학 교과군(群)’으로 묶어 고등학생들이 20개 세부과목 중 1과목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의 선택 폭을 넓혀 준다는 취지이지만 ‘어렵지만 중요한’ 과학과 수학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왜 과학교육만 강조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채 회장=과학은 하루 이틀 공부해서는 안 되는 과목입니다.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은 기초를 닦지 못해 나중에 관심마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쉬운 것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과학교육을 충분히 받게 한 뒤 선택하도록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우리 교육은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선택을 장려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윤 부회장=교육인적자원부 방침대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은 학생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학입시는 좀 달라야 합니다. 이공계 대학에 진학할 사람은 좀 더 심화된 수학과 과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이공계 대학에서 필요한 소양은 반드시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과학교육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채 회장=대학은 초중등 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대학들은 시험을 어렵게 하면 응시자가 줄어든다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좀 더 쉽게 냈더니 이번에는 학생이 늘었지만 과학 소양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교육부 개혁안에도 문제가 있지만 대학도 학생 선발 기준을 강화해야 합니다. 수능에서 적어도 이 정도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아니면 안 뽑는다는 기준 같은 게 필요합니다.

▽윤 부회장=교육부는 현행 수능을 통해 충분히 학생들을 선별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학생 수준을 맞추려면 이과 학생들이 선택하는 ‘수리 가형’도 세분해야 합니다. 대학들이 수능 비중을 낮추고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실기와 비슷한 전형을 도입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26일 발표 예정인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해 바라는 게 있다면….

▽채 회장=과학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4과목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 배울 수는 없습니다. 과학과 수학에 대한 기본 실력을 가지고 대학에 가야 대학이 훨씬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윤 부회장=10∼20년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합니다. 1970년대 한국과학기술원이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세운 것이 얼마나 나라살림에 보탬이 됐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교육 현실은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 교육부 등 이해당사자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모습입니다. 이쪽저쪽 얘기를 듣다 보면 해결이 안 될 정도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최고책임자가 나서서 해결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입니다.

정리=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사회=정경준 경제부 차장

○채영복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1959년 서울대 화학과 졸업 △1982∼1993년 한국화학연구소장 △1989∼1999년 대통령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1995∼1997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2002∼2003년 과학기술부 장관 △2005년∼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196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2년 금탑산업훈장 수상 △1994∼1995년 삼성전관 사장△1997∼1999년 삼성전자 사장 △2003년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수상 △2004년∼한국공학한림원 2, 3대 회장 △2000년∼삼성전자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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