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카페]세수 1위와 꼴찌 사이

  • 입력 2007년 2월 5일 03시 01분


한국에서 기업만큼이나 천의 얼굴을 가진 곳이 있을까요. ‘경제 성장의 주역’이라는 칭송과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란 비난이 엇갈립니다.

경제가 좋을 때는 물론 어려울 때도 평가가 다양합니다. ‘기업들의 실력이 없어서’라는 비판론과 ‘기업 환경이 안 좋아서’라는 동정론이 교차합니다.

이 같은 평가는 국가기관인 국세청에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국세청이 4일 발간한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104개 일선 세무서 가운데 2005년 기준으로 세금을 가장 많이 걷은 곳은 서울 남대문세무서(7조300억 원)입니다. 2003년과 2004년에는 정유업체들이 내는 교통세에 힘입어 울산세무서가 1위를 했지만 2005년에는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이유는 SK텔레콤 때문입니다. 이 회사가 2004년 12월 본사를 남대문세무서 관할로 옮기면서 불과 300억 원 차이로 1위와 2위가 뒤집힌 것입니다. SK텔레콤이 2005년에 신고한 법인세는 6832억 원입니다.

반면 관할 지역에 공단이 없는 경북 영주세무서는 346억 원을 걷는 데 그쳐 꼴찌를 했습니다. 남대문세무서와의 세수(稅收) 실적 차이는 200배가 넘습니다. 기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엄청난 격차를 보인 것입니다.

또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2005년에 기업 3곳 가운데 1곳은 적자를 내 세금을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법인세 전체 규모는 5조 원 넘게 늘었습니다. 매출 500억 원 이상 대기업이 낸 법인세는 전체의 62%에 이릅니다.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도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곳은 6343개 사로 2004년(5683개 사)보다 11.6% 증가했습니다.

일부 대기업의 실적이 좋아서 법인세가 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기업들의 고질적인 분식회계 때문에 세무조사 건수가 증가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기업은 성장의 동력이고 국가 재정의 버팀목입니다. 세수가 늘어 재정이 건실해지면 그 과실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꾸준히 세수를 늘리는 국세청으로서는 이러한 기업들이 고마운 존재겠지만 세무조사 실적 등을 보면 앞으로는 다독이고 뒤로는 매를 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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