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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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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잠시 함박눈이 내린 지난달 30일. 인천 서구 검암동 서해그랑블 아파트 인터넷 동호회의 김종순 회장이 회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날렸다. 이날 모인 회원은 10여명.
김 회장은 “다들 집이 가까워 밤 늦게까지 어울려도 마음이 편하다”며 “웬만한 친척보다 동호회 회원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 아파트 입주민 동호회가 ‘신(新) 마을회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호회에서 만난 이웃들이 삭막하기만 하던 아파트 문화에 정(情)을 심고 있다. 동네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동호회는 살기 좋은 동네를 가꾸는 풀뿌리 조직인 셈이다.》
| ‘행복한 아파트’ 특집기사목록 |
○ 30대부터 50대까지 ‘호형호제’
서울 양천구 신정동 동일하이빌 아파트에는 ‘동·남·아’ 사람들이 있다. 동·남·아는 족구(足球) 동호회인 ‘동네에 남아서 노는 아이들’의 줄임말. 회원은 30대 초반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단지 옆 운동장에 모여 족구를 한다. 회원들의 유니폼 오른쪽 가슴에는 아파트 이름, 왼쪽 소매에는 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전 7시 반 경기를 시작하는데도 참석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충성파’가 많다.
지난달 26일엔 경기가 끝난 뒤 오전 10시 반에 다시 모였다. 잠시 집에 들러 씻고 난 뒤 가족과 함께 동네 이름난 음식점으로 ‘맛집 나들이’를 간 것이다. 이들은 최고령자와 최연소자의 나이 차가 서른 살이 넘는데도 모두 ‘형님, 아우’로 통한다.
동호회 오정석 회장은 “가까운 곳에서 이웃들과 운동하니 가족이 좋아한다”며 “무엇보다 ‘주말에 집에서 뭐 할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동호회는 구슬공예, 배드민턴, 골프 등 12개에 이른다. 주민들은 단지 내 연회장에 각자 집에서 음식을 싸 갖고 와서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 좋은 동네 만들기, 스스로 나선다
아파트 동호회는 동네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2일 낮 경기 용인시 동백지구 현진에버빌 영화감상실에서 동백지구 아파트 입주자 모임인 ‘동백사랑’ 운영진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동백사랑은 동백지구 내 10여 개 아파트 단지 동호회의 연합체로 회원만 1만1300여 명에 이른다. 이날 안건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유치 △동백사랑 장학사업 추진 △자율 방범활동 추진 △마을버스 유치 △동백사랑 스티커 제작 등이었다. 활동만 놓고 보면 웬만한 ‘기관’ 못지않다.
회의에서는 “비평준화 지역인 용인시에서 동백지구 내 고등학교 미달 사태를 막으려면 장학금을 줘 똑똑한 학생들을 데려와야 한다” “내년 4월 지구 내에 파출소가 들어오기 전에 방범대를 꾸려 주민들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등의 얘기가 오갔다.
이들은 매달 한국토지공사, 한국도로공사, 용인시 등과 회의를 하면서 동백∼죽전 간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 설치상황을 꼬박꼬박 점검한다. 최근에는 아파트 단지 옆 고속도로 2.5km 구간의 방음벽 높이를 6m에서 12m로 높이는 성과도 거뒀다.
박재영 동백사랑 회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수시로 관청을 드나든다”며 “우리의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동호회=풀뿌리 민주주의의 장(場)”
하지만 아파트 동호회가 항상 긍정적인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의 아파트 동호회는 부녀회를 대신해 ‘우리 아파트 ○억 원 이하로는 내놓지 말자’는 글을 띄워 새로운 집값 담합집단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700여 개의 아파트 인터넷 동호회를 관리하는 닥터아파트의 이영호 팀장은 “아파트 동호회가 인터넷시대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주민자치 기구로 거듭나고 있다”면서도 “커진 힘을 부적절한 용도로 악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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