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화재 김우황 부회장 “첫째도 이윤, 둘째도 이윤”

  • 입력 2006년 6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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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사장’이라는 제일화재 김우황(65·사진) 부회장을 인터뷰한 건 월드컵 토고전이 벌어진 다음 날인 14일.

한국팀이 경기 종료를 조금 남겨둔 시점에 상대 골문 앞에서 얻은 프리킥을 뒤로 돌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돌리는 게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포츠맨십이 중요하긴 해도 축구 경기는 이기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의 경영관도 축구에 대한 생각과 닮았다. 경영자는 모름지기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살지만 기업은 이익을 먹고 산다”는 말도 했다.

김 부회장은 20일 한국경영사학회가 주는 ‘한국의 최고경영자(CEO) 대상’을 받는다.

그는 1984년 내쇼날푸라스틱 싱가포르 법인 대표이사 취임 이후 20년 넘게 내쇼날푸라스틱 호남식품 우양공업 제일화재의 CEO를 지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직업이 사장’.

죽을 고비를 2번 넘겼다. 1961년 군 복무 때 휴가병을 읍내로 실어 나르던 트럭이 한탄강 아래로 추락했다. 운전병을 포함해 모두 죽고 그만 살아남았다. 두 번째는 1978년 4월 유럽 출장에서 돌아오던 때. 그가 탔던 대한항공 보잉707 여객기가 옛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가 전투기의 공격을 받고 소련 서북부 무르만스크 빙판 위로 동체 착륙했다. 2명이 죽고 10여 명이 부상했다. 김 부회장은 코를 많이 골아 뒤쪽으로 자리를 바꿨는데 원래 그의 자리에 앉았던 승객이 사망했다.

“그 일 이후 남은 삶은 덤이라는 생각에 부담 없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기로 했지요.”

제일화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부임한 건 2001년.

보험업계에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시 제일화재는 외환위기 여파로 금융감독원에서 ‘경영개선 요구’를 받을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자신의 장기인 제조업 마인드를 회사에 불어넣기로 했다. 생산현장처럼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전국 32개 지점을 8개로 축소하고 불필요한 인력을 줄여나갔다.

외형 성장에서 탈피해 수익성을 가장 우선시하도록 회사 체질을 바꿨다. 사업비를 줄이고 수익이 낮은 자산은 과감히 처분했다.

1년여 후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제2 창업’ 기치를 내걸고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그의 재직기간 중 히트 보험상품이 쏟아졌다.

그는 손바닥만 한 크기로 코팅한 종이쪽지에 생활수칙을 적어 지갑에 넣어 다닌다. 거기에는 ‘첫째,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둘째,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 셋째, 거짓말하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달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그는 ‘Be The First 2010!’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2010년에는 자산 2조5000억 원에 안정적 재무구조를 가진 ‘고객만족지수 1위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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