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피소…멍드는 ‘수출 코리아’

  • 입력 2005년 12월 1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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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에 있는 연매출 1000억 원대의 리모컨 제조기업 A전자는 지난 3년이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필립스전자가 2002년 리모컨 제조기술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25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7∼9월) LG전자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서 피소된 소송 건수만 169건, 소송 가액이 5억 달러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사업보고서에서 각각 15건과 8건의 해외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지만 법조계에서는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수출기업들이 해외 ‘법률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전쟁 기술전쟁이 이제 법률전쟁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후 지난해까지 10년간 한국 제품이 반(反)덤핑과 상계관세 분야에서 제소당한 건수는 각각 207건과 14건으로 모두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한국 기업과 한국 제품을 상대로 한 이 같은 해외 소송사태는 한국이 산업과 기술 발전으로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위상을 위협하자 이들 국가가 전략적으로 법률전쟁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국내 로펌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미국 법무부로부터 D램 반도체 가격 담합을 이유로 각각 3억 달러와 1억85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하이닉스는 3분기에 벌어들인 순이익 3780억 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납부해야 할 처지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해외 소송 건수가 최근 몇 년 새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소송을 내기 쉬운 미주 지역뿐만 아니라 유럽, 중동, 동남아 등 세계 각국에서 삼성 관계사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가 집계한 올해 10월 말 현재 전자산업계 특허분쟁 현황에서도 법률분쟁의 급증 현상이 나타난다. 1986년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기술특허침해 소송을 낸 이후 2000년에 이르기까지 특허침해 소송은 34건인 데 비해 2000년 이후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제기된 해외법률 분쟁은 61건이다. 이것도 자발적으로 보고된 것을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자원부 강경성 서기관은 “미국 기업들이 법률분쟁을 제기해 소송 또는 합의를 통해 받아내는 배상 금액 상위 10위 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은 한국기업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정재관 특허지원센터팀장은 “2000년 이후 본격화된 해외기업의 법률분쟁 공세에 국내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위기를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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