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애니콜안에 하이닉스가 산다?…계열사 챙기기 옛말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09분


《“삼성의 계열사라는 이유로 부품을 구매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이기태(李基泰) 정보통신총괄 사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성능과 가격만이 부품 선택의 기준이라는 것.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휴대전화를 만드는 정보통신사업부는 하이닉스반도체 제품을 쓰고 있다. LG전자도 최근 삼성전자와 휴대전화 핵심 부품인 플래시메모리 공급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의 현장은 냉혹하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경쟁 대상이 전 세계로 넓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경쟁업체에 부품 더 싸게 공급

최근 미국 애플사는 새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 나노’를 내놨다. 기존 제품보다 음악 저장용량은 크게 늘리고 크기는 줄인 데다 값은 기존 제품보다 싸 큰 인기를 끌 전망이다.

이는 핵심 부품인 플래시 메모리를 삼성전자가 애플에 낮은 가격으로 대량 공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대신 삼성전자는 안정적인 부품 공급시장을 확보했다.

반면 삼성전자에서 MP3 플레이어를 만드는 디지털미디어(DM)사업부는 비상이 걸렸다. 경쟁 상대인 애플의 시장점유율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2007년 MP3 플레이어 세계 1위’를 선언한 상태여서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DM사업부는 최근 반도체사업부에 ‘애플과 같은 수준’으로 플래시메모리를 공급해 달라고 했다가 “그만큼 많이 사 주면 그렇게 해 주겠다”는 핀잔만 들었다.

삼성전자의 플래시메모리로 MP3 플레이어를 만들던 국내 중소업체들도 난감해졌다.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대량 구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휴대용 저장장치를 생산하던 한 중소업체는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부품 공급 불가’ 방침을 통보받았다. 애플에 공급할 물량도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내 식구 봐주기는 옛날 얘기

LG텔레콤은 일본 카시오에서 휴대전화를 사온다. 국내의 대표적인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LG전자가 LG텔레콤 전용 휴대전화 신제품을 더는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이 낮은 LG텔레콤에 휴대전화를 우선 공급해 봐야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SK텔레콤 단말기부터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사업부는 핵심 부품인 플래시메모리나 멀티칩 패키지(MCP)를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제품이 아닌 하이닉스반도체 것을 쓴다.

LG전자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플래시메모리의 15%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것이다.

LG화학은 최근 삼성전자 액정표시장치(LCD)사업부에 핵심 부품인 편광판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일본 니토사의 제품을 주로 써 왔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만드는 노트북PC와 모니터, TV 등에 들어가는 LCD나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역시 계열사 제품을 100% 쓰지 않은 지 오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같은 회사에 소속됐다 하더라도 사업부별로 독립 경영을 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무한경쟁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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