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딸들 실·력·경·영

  • 입력 2005년 8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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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재벌가(家) 여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 후 남편을 내조하면서 외부 활동이라야 화랑이나 호텔 내 꽃집을 운영하는 정도의 이미지가 강했다. 기업을 물려받아 직접 경영하는 일도 일부 있었지만 흔하진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디자인이면 디자인, 경영이면 경영, 자신만의 역량을 펼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눈에 띄는 혁신이나 신규사업 진출을 지휘하는 ‘오너가 여성’도 적지 않다.

재계에서는 대기업 오너 가문의 여성들도 혈통만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열릴지 주목하고 있다.

○ 혁신을 리드한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의 대명사’로 통하지만 지난해까지는 고급화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롯데는 올해 초 서울 중구 소공동 본점 옆 옛 한일은행 건물을 명품관(에비뉴엘)으로 리모델링해 내놓았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신격호(辛格浩)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張瑄允·34) 롯데쇼핑 해외명품담당 이사. 신 회장의 딸인 신영자(辛英子) 롯데쇼핑 총괄부사장의 둘째 딸이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장 이사는 해외명품팀 바이어에서 시작해 명품 관련 일만 6년째 하고 있다. 에비뉴엘 개관 때도 입지와 매장 넓이를 까다롭게 요구하는 명품업체들을 설득해 유명한 업체를 대부분 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보령메디앙스의 김은정(金恩玎·36) 전무는 김승호(金昇浩) 보령그룹 회장의 넷째 딸. 큰언니인 김은선(金恩璿·47) 부회장이 2003년부터 그룹 경영을 대부분 책임지고 있으며 김 전무는 신규사업을 맡고 있다.

프랑스 유아복 ‘타티네 쇼콜라’와 미국 아동복 ‘오시코시 비고시’를 잇달아 들여와 보령메디앙스를 유아화장품 전문 기업에서 종합유아용품 업체로 변신하게 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삼성그룹 계열인 호텔신라에서는 최근 몇 년간 ‘소리 없는 혁명’이 진행됐다. 이건희(李健熙) 그룹 회장의 맏딸 이부진(李富眞·35) 상무가 경영전략을 맡으며 ‘체질 바꾸기’ 작업을 지휘했다.

이 상무는 식음료 담당자와 함께 해외 고급호텔을 돌아다니며 어떤 점을 벤치마킹할지 일일이 지시했다고 한다. VIP 멤버십 피트니스클럽을 새로 시작하고 명품을 면세점에 대거 입점시키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연회장 재단장 작업을 하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 속에서도 지난해 호텔신라는 전년 대비 10% 가까이 늘어난 423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 전공을 살린다

생활용품 전문회사 피죤의 이주연(李周姸·41) 부문장은 이윤재(李允宰) 회장의 외동딸로 대학, 대학원에서 각각 영문학과 회화를 전공했다.

부사장급인 그는 섬유유연제만으로는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유아화장품인 ‘보쥴’을 도입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또 액체세제, 냄새와 습기를 동시에 잡는 제습제 등 ‘퓨전 상품’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미술 전공을 살려 용기 디자인에도 일일이 신경을 쓴다.

웨스틴조선호텔 정유경(鄭有慶·33) 상무는 이명희(李明熙) 신세계그룹 회장의 딸로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를 졸업한 전공을 발휘해 호텔의 디자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호텔 로비를 달리 꾸며야 한다는 생각으로 호텔 업계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두게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구자홍(具滋洪) LS그룹 회장의 외동딸 구진희(具眞嬉·28) 씨는 워커힐호텔에서 VIP 마케팅을 한 경력을 살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명상센터 ‘아현’을 운영하고 있다. 에스모드 패션디자인스쿨을 나온 덕분에 수련복, 방석, 찻잔 등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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