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대문시장 근처에서 10년 넘게 일식집을 운영하는 김모(52) 씨는 요즘 사업을 그만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와 접대비 실명제 여파로 저녁 술장사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점심시간 손님마저 줄어 매출이 작년보다 30%가량 감소했다.
“여기서 가까운 북창동 술집도 최근 4곳이나 문 닫았다고 하더군요. 투자비만 건지면 장사를 때려치우겠다는 상인들이 많습니다.”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 증가했다지만 ‘밑바닥 경제’에는 훨씬 매서운 삭풍(朔風)이 불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피부로 느끼는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은 올해 들어 계속 0%대에 머물렀다.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싸게 팔고 비싸게 사는’ 수출입 구조가 굳어지는 데다 국내소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소득’ 상반기 20조6000억 원
지표와 현실 간의 괴리가 커진 데에는 교역조건이 악화된 이유가 크다.
올해 2분기(4∼6월)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무역손실은 10조5249억 원으로 종전 최대기록이었던 1분기(1∼3월) 10조756억 원을 갈아 치웠다.
실질무역손실이란 수출가격은 싸진 반면 수입가격은 비싸져 수출로 벌어들인 돈의 실질 구매력이 얼마나 감소했는지를 나타낸 것. 바꿔 말하자면 ‘잃어버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수출가격이 치열한 경쟁으로 떨어진 반면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2분기 교역조건을 반영한 GDI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0.2%에 그쳐 1분기 0.5% 증가에 이어 계속 0%대에 머물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兪炳圭) 경제본부장은 “GDI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소비여력이 약하다는 증거”라며 “하반기 내수경기 회복에도 큰 제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해외 씀씀이는 커지고, 국내 소비는 잠잠
국내소비 부진도 체감경기가 싸늘한 이유로 꼽힌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3.3%에 머물렀지만 민간소비가 2년 반 만에 최고치인 2.7% 늘어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국민들의 체감경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해외소비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한은에 따르면 2분기 가계의 국내소비는 83조6444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해외소비는 작년 2분기 2조4513억 원에서 올 2분기 3조1822억 원으로 29.8% 증가했다. 해외여행과 유학, 연수 등이 크게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중앙대 홍기택(洪起澤·경제학) 교수는 “해외소비가 국내 생산 활동에 기여하는 것은 거의 없다”며 “국내소비가 증가할 수 있도록 교육, 의료, 관광 등의 서비스산업을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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