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기업의 마음부터 잡아라

  • 입력 2004년 12월 1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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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기업 투자의 침체라 할 수 있다. 생산시설을 늘리지 않으니 자연 신규 채용에도 인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일자리와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져 소비마저 위축시킨다. 설비투자도 꺼리는 기업들이 당장 결실이 나타나기 힘든 기술투자나 종업원 교육훈련 등에 돈을 쓸 리가 없다. 이는 곧 성장잠재력 자체의 잠식을 초래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조선시대 당파싸움하듯 민생과 따로 놀고 있고, 정부 역시 급한 마음이 없는 듯 총체적 노력보다는 단발성 정책만 내놓고 있다.

▼재정지출만으론 내수 못살려▼

우리 경제를 단칼에 회생시킬 묘안은 없다. 길을 찾으려면 국회, 정부, 대기업의 힘 있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처럼 돌아앉아 자기 얘기만 하면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대화의 물꼬는 그래도 국민세금을 쓰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 재정자금을 동원해 정부 홀로 내수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기침체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목적의 재정지출은 필요하지만 소비와 투자 없이 경제가 회복될 수 없다.

경제주체들의 마음을 돌리려면 무엇보다 신뢰할 만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한국형 뉴딜’ 목적으로 생각한 10조 원가량의 재원을 백화점식 공공투자로 분산하기보다 사회적 편익이 크고 성장 잠재력도 높여줄 인적자본과 기술혁신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출산율 향상과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인프라 확충, 대규모 해외인턴 등 과감한 청년인력 프로그램,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양성을 위한 연구개발과 직업훈련 지원 등 아이디어는 찾으면 있다.

투자를 유도하려면 기업이 왜 힘들어하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인들이 느끼는 투자 위험은 큰 반면 이를 흡수해 줄 제도적 장치는 매우 부족한 상태다. 투자 환경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개방과 자율화의 진전으로 경쟁 자체가 치열해진 측면, 정부 정책의 일관성 결여, 정치권이 초래한 대립적 정책 환경 등이 혼재된 상태다. 보호된 시장에서 정부나 계열사 보증으로 돈 빌려 장사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식시장에도 의존하기 힘드니 자연히 기업 내에 현금을 쌓아두는 보수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나 세금 인하와 같은 가격유인 정책을 펴면 정부 자원의 낭비와 부작용만 초래하기 쉽다. 기업 비용을 줄여주려면 노사관계의 안정이 우선이다. 복지제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간의 양보만 강요할 수는 없다. 정치논리에 휘둘린 무절제한 세금 인하나 산발적인 복지 지출이 확산되기 전에 노동과 복지를 재정의 틀 안에서 체계적으로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정책적으로 투자위험을 분산시키려면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 주식시장의 자금조달 및 위험흡수 기능을 강화하려면 기관투자가 육성과 기업투명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연금 기금의 주식투자를 투명한 절차를 통해 추진하고 투신사의 구조개혁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투자 관행이 바뀌면서 실효성은 떨어지고 부작용은 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의 한시적 성격을 인정하고 시장과 소액주주의 감시기능에 바탕을 둔 지배구조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또한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제2금융권의 정비를 서둘러 중소 벤처기업의 고수익·고위험 투자에 대한 재원 조달 창구를 확대해야 한다.

▼투자·소비 유도할 정책 내놔야▼

정부 재정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부추길 방안 역시 강구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불균형적 경제구조하에서는 적절한 사회적 위험 흡수 없이 중소기업, 중하계층, 지방경제가 홀로 서기 어렵다. 갈라먹기식의 재원 분산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목표를 하나의 정책체계로 묶을 수 있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제한된 예산으로 일 잘하는 정부가 되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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