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농사 그만두겠다”… 폐원 신청 봇물

  • 입력 2004년 8월 31일 18시 53분


“이번 기회에 지원금을 받고 과일 농사를 정리하겠다.”

정부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피해가 예상되는 시설 포도와 복숭아, 참다래(키위) 재배 농가들을 대상으로 과수농업 구조조정을 위한 과수원 폐원(廢園) 신청을 받기로 하자 농민들의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부의 예상보다 약 5배나 많은 폐원 신청이 쏟아지면서 장기적으로 과수산업 기반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신청 현황=농림부는 올해 과수원 폐원 지원금으로 234억원을 책정하고 시설 포도와 복숭아, 참다래 과수원 500ha를 폐원시키고 132ha를 타인에게 양도시킬 계획이었다.

300평당 지원금은 시설 포도가 1031만원, 복숭아 344만원, 참다래 414만원이다.

그러나 농림부의 잠정집계 결과 폐원 신청액이 전국적으로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숭아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북의 경우 주산지별로 복숭아 과수원의 40∼50% 가량이 폐원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천시는 전체 2000ha 가운데 38%, 청도군은 1913ha 가운데 48%, 영덕군은 52%가 폐원을 신청했다.

충남도는 시설 포도농가의 53.4%인 86ha가 신청했다.

경남 지역에서도 61억원에 이르는 폐원 지원금을 신청했다. 이는 정부가 올해 책정한 전체 지원금의 20%가 넘는다.

경남지역의 작목별 폐원 신청 면적은 시설 포도가 전체면적 96ha의 25%인 26.6ha, 복숭아는 476ha의 21%인 101.4ha, 참다래는 250ha의 5%인 14ha 등이다. 특히 함안군은 전체 복숭아 재배농가의 30%인 188농가가 폐원을 신청했다.경남도 관계자는 “과수농가 폐원 지원사업이 2008년까지 진행되지만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는 불안심리가 작용하면서 4, 5년 물량이 한꺼번에 신청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수기반 붕괴 우려=전문가들은 농민들이 경쟁적으로 과수원 폐원 신청을 한 것은 농정에 대한 불신,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손해, 고령화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들은 한꺼번에 많은 과수원이 폐업할 경우 국내 과수재배 기반이 붕괴되고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폭등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전북 전주의 복숭아 재배농민 김모씨(57)는 “이번에 지원금을 받은 농민들이 한꺼번에 소득이 높은 작목으로 대체 재배를 하면 또 다른 생산과잉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림부 과수화훼과 백영현 사무관은 “칠레와 생산 시기가 겹치는 시설 포도는 어쩔 수 없지만 국제경쟁력이 있는 복숭아 과수원의 폐원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