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으로 안마, 후원금으로 골프…정치자금 ‘모럴 해저드’

  • 입력 2004년 8월 17일 18시 58분


A당의 당직자들은 자신의 연말정산소득세 740만원을 국고보조금에서 빼내 납부했다. 또 다른 정당의 당직자들은 안마를 받는 등 사적인 용도로 쓴 126만원을 선거보조금에서 충당했다.

대학원 등록금 417만원을 국고보조금으로 납부한 지구당위원장도 있고, 국고보조금 80만원으로 안경 등을 구입한 지구당위원장도 있다.

정당의 정책개발 등 운영비용과 선거비용을 세금으로 보태주자는 취지로 각 정당에 지급하는 국고보조금 및 선거보조금이 정치인들의 개인 용돈으로 줄줄이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03년 이후 선관위에 보고된 정치자금 및 국고보조금, 선거비용 내용을 실사해 17일 발표한 결과다.

국회의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는 액수 면에서 덩치가 훨씬 더 컸다.

선관위에 따르면 민주당 추미애(秋美愛) 전 의원은 후원회로부터 기부받은 정치자금 잔액으로 자동차 구입비용 2468만원을 지불했다. 16대 국회의원 임기를 3, 4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원고도 완성되지 않은 책 출판비용으로 1억원을 쓰기도 했다는 것.

법률상 국회의원은 임기가 끝나면 후원금 잔액을 정당에 인계하든지 공익법인 또는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추 전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6월 초 후원금 잔여금 5900만원을 시민단체와 복지단체에 기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민주당 박상희(朴相熙) 전 의원은 후원회로부터 기부받은 1억1000여만원을 사적인 용도로 썼다. 아파트 전세보증금 9000만원, 화환비 640만원, 골프 및 접대성 식사비 399만원, 미국 여행경비 529만원, 교통범칙금 및 아파트관리비 519만원, 상품권 구입 300만원, 교회 헌금 200만원 등이다.

한 국회의원의 회계책임자는 월 70만원인 사무실 임대료를 150만원으로 허위 신고하고 조화를 실제보다 390만원어치나 더 구입한 것으로 보고했다가 들통났다.

선관위는 추, 박 두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회의원의 후원금 잔액과 관련한 불법행위는 올해 3월 개정된 정치자금법에 따라 선관위가 처음 실사해 드러났다.

박 전 의원은 “정치활동과 관련해 당연히 쓸 수 있는 용도라고 생각해서 썼을 뿐 법 위반은 아니다. 모든 의원들이 그렇게 한다”고 반박했다. 추 전 의원은 미국 체류 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비서관을 지낸 손모씨는 “정당한 지출이었고 책을 쓰기 위한 원고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당 차원에서도 국고보조금 허위 보고 대열에 가세했다. 당사 화재보험료 41만원을 국고보조금에서 지출한 것으로 허위 보고한 정당이 있는가 하면, 정책 관련 회의를 하고 식사비 184만원을 썼다며 국고보조금을 축낸 정당도 있었다. 한 정당은 여론조사 비용 8250만원을 예비 후보자로부터 받아 지출하고도 국고보조금 1억5972만원이 쓰였다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 같은 방식으로 각각 1억5000여만원, 민주당은 1억6000여만원을, 민주노동당은 1000여만원, 자민련은 800여만원을 각각 유용했다. 이들 정당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3·4분기 국고보조금을 지급할 때 유용액의 2배만큼 뺀 금액을 받게 된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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