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야, 간접광고 낯뜨겁잖니?”

  • 입력 2004년 7월 27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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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방영된 SBS ‘파리의 연인’ 에서 김정은(태영)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를 홍보하는 패널을 들고 나왔다.-인터넷 화면 캡처
18일 방영된 SBS ‘파리의 연인’ 에서 김정은(태영)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를 홍보하는 패널을 들고 나왔다.-인터넷 화면 캡처
“여기(휴대전화에) 노래가 몇 곡 들어가는지 기억해? 한곡에 4분, 마흔 곡이면 160분이야.” “영화, 그 이상의 감동,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인 우리 CSV에서는….” “개인적으로는 저걸(‘슈렉2’) 추천할게. 보고 나면 동심이 생기거든.”

듣기만 해도 유혹적인 이들 문구는 광고 카피일까? 아니다. 최근 시청률 50%를 넘은 SBS 주말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나오는 대사다. 배우들은 대사를 통해 휴대전화의 구체적인 기능을 소개하거나 특정 영화를 추천한다. 모두 드라마 속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이다.

○ 한회에 로고 ‘GD’ 38회 ‘CSV’ 11회 내보내

GM대우, 의류업체 PAT, 복합영화상영관 CGV 등에서 제작 지원을 받은 ‘파리의 연인’은 설정부터 협찬 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 일부 장면에서는 가려지기도 하지만 CSV 직원인 여주인공 태영(김정은)과 GD자동차 사장인 기주(박신양)가 나오는 대목은 대부분 간접광고의 퍼레이드를 벌이는 듯하다. 태영은 특정 영화 포스터 앞에서 대화하고 기주와 아버지 한 회장의 대화에는 회사 로고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김정은은 최근 개봉한 자신의 출연 영화 ‘내 남자의 로맨스’를 홍보하는 패널을 들고 대화하는 장면도 나온다. 17일 방영된 11회의 경우 ‘GD자동차’는 38회, ‘CSV’는 11회, ‘PAT’는 17회 로고를 드러냈다.

리조트 그룹 클럽메드의 제작 지원을 받은 MBC 드라마 ‘황태자의 첫사랑’도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이 리조트 내 관광상품을 반복해 보여 준다. 15일 방영된 이 드라마 8회분에서 건희(차태현)는 리조트에서 스쿼시를 하고 승현(김남진)은 리조트 수영장에 앉아 있고 유빈(성유리)은 해변으로 달려간다.

시청자들은 이처럼 노골적인 간접광고가 극의 흐름을 끊는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파리의 연인’의 폐인(열혈팬)이라는 배윤경씨(24·여·대학생)는 “이 드라마의 순수한 사랑에 몰입되다가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상품 홍보에 기분이 깬다. 줄거리에 필요하지도 않은데 억지로 끼어 넣었다는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

간접광고가 왜 이렇게 노골화할까?

외주제작사의 제작비 부족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 외주제작사의 이사는 “편당 제작비가 7000만∼1억2000만원인데도 방송사에서 지불하는 돈은 편당 6000만∼7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외주제작사들은 방송사의 ‘낙점’을 받기 위해 A급 스타나 PD 캐스팅에 사활을 건다. 이 과정에서 배우의 몸값이 편당 2000만원 가까이 오르고 ‘스타 PD’들도 편당 1000여만원의 연출료를 요구하자 외주제작사들은 모자라는 제작비를 간접광고로 때우는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가 끝나는 장면에서 맨 먼저 이름이 나오는 속칭 ‘1바(Bar)’ 업체는 2억원 안팎을, 두 번째 오르는 ‘2바’ 업체는 1억∼1억5000만원의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끝난 한 인기 드라마의 작가는 “드라마 내용과 상관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광고를 위해 줄거리에 집어넣기도 한다. 제작 현실을 아는 처지에 작가가 고집만 부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특정 의류 브랜드를 드러낸 MBC '황태자의 첫사랑'

○ 광고주들 직접광고보다 광고료 싸 군침

광고주에게도 간접광고는 군침을 삼킬 만하다. 밤 10시 전후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의 15초짜리 광고 가격은 1000여만원. 하지만 2억원을 주고 20부작 미니시리즈에서 편당 30초만 노출되더라도 광고 가격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드라마 속 간접광고는 직접광고에 비해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 가능성도 휠씬 낮다. 그러면 이를 규제해야 할 방송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

방송위원회는 특정 기업의 상표나 로고 등을 변경해 부각시키는 것을 간접광고로 보고 엄격한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방송위에 따르면 ‘GM대우자동차’를 ‘GD자동차’로, ‘CGV’를 ‘CSV’(‘파리의 연인’)로, 엘레쎄(ellesse)를 ‘ellesso’(‘황태자의 첫사랑’)로 표시하는 것은 모두 규정 위반이다.

방송위 관계자는 “드라마 속 간접광고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현재 ‘파리의 연인’ 등 해당 드라마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조사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성(24·고려대 환경생태공학 4년) 김수연(24·고려대 중어중문 4년) 송상아(23·연세대 생활디자인 4년) 김현진씨(21·서울대 경제 3년)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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