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또다른 준조세” 반발

  • 입력 2004년 5월 21일 20시 08분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재계는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밝힌 ‘사회공헌기금 조성 공론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사회공헌기금 조성에 대한 재계와 노동계의 시각 차이가 커 올해 노사 단체협상의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현재 정부와 노동계, 재계 모두 사회공헌기금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어 공론화 과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기업경쟁력 향상과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등 사회약자 보호라는 서로 상충되는 가치를 조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사회공헌기금 관련 논쟁을 합리적인 공론화를 통해 검증하면서 노사 대타협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논쟁의 경과=민주노총 지도부는 올해 초 각 연맹이 실정에 맞게 전체 근로자의 32.6%(노동계 추산 56.3%)에 이르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구제하기 위해 ‘연대기금’을 조성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대기업 노조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사회적 압력을 의식한 것.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자동차 4사 노조는 민주노총의 지침을 받아들여 ‘사회공헌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순이익의 5%를 산업발전 및 비정규직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적립할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연대기금’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도입해 올해 단체협상에서 사용자측에 요구할 방침이다.

사회공헌기금 조성이 논란거리가 된 것은 김 장관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부터.

김 장관은 2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사회공헌기금 조성과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이 부총리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힘으로써 사회공헌기금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재계와 투자자 입장=재계는 사회공헌기금을 다른 형태의 준조세로 보고 있다.

정규직의 임금 양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기업만 기금을 내놓는다면 이는 준조세와 마찬가지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것.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회공헌기금 조성 요구 자체가 원칙적으로 노사간에 교섭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증권가의 반응도 우호적이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회사 사장은 “기금 조성의 목적이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라면 국가가 세금을 거둬서 할 일이지 기업만이 부담할 사안이 아니다”며 “회사 이익을 어디다 쓸지는 주주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제안=최근 ‘노사 상생을 통한 대타협’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낸 삼성경제연구소 이정일 수석연구원은 “노동계의 주장이 의미 있는 것이지만 종합적인 시각이 부족하고 이슈를 제기하는 순서도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먼저 노조가 양보할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했는데 이것이 부족했다는 것. 또 노조가 자신들만의 이익뿐만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사회적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종합적인 안목을 갖고 있다는 점을 회사와 정부에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총 인건비가 크게 증가하지 않고 노조도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면 사회공헌기금과 관련한 논쟁은 의미 있는 노사문화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재의 공방은 정치적 공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기업 순익 5%씩 출연”민노총 금속노련 지침

■ 勞주장 사회공헌기금

현대 기아 대우 쌍용 등 자동차 4사 노조가 요구하는 사회공헌기금 조성은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자동차분과가 3월에 만든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 지침에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자동차회사의 사회공헌을 위해 각사가 순이익의 5%를 기금으로 출연할 것을 요구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1월 비정규직의 차별 문제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연대기금’을 조성하라는 포괄적인 지침을 산하 연맹에 전달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연대기금이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위한 펀드”라며 “금속연맹이 이 펀드의 목적과 내용을 정해 사회공헌기금으로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자동차 4사 노조는 금속연맹 지침에 따라 임단협에 앞서 3월 22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요구했다.

4사 노조는 사측이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지 않으면 6월 연대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은 노조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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