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멋]김태환 롯데음료 기획팀장의 신제품 개발이야기

  • 입력 2004년 4월 5일 17시 18분


롯데칠성음료의 김태환 음료기획팀장이 지난해 초 망고 주스를 신상품으로 개발해 연간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변영욱기자 cut@donga.com
롯데칠성음료의 김태환 음료기획팀장이 지난해 초 망고 주스를 신상품으로 개발해 연간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변영욱기자 cut@donga.com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반 서울 서초구 잠원동 롯데복지센터 빌딩 3층 롯데칠성음료 마케팅실 내 회의실. “이게 시장에 나가면 무조건 아웃이야. 라이트한 맛을 가미해야 웰빙 컨셉을 강조할 수 있어. 젊은 사람들도 걸쭉한 것은 싫어하지. 시제품을 중앙연구소에 다시 보내 이 점을 알려주세요.” 롯데중앙연구소가 보낸 포도 과즙 음료 시제품을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맛을 본 김태환(金泰換) 음료기획팀장은 팀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회의실을 나왔다.》

“제품화 단계에서 시장에 나가지 못하고 이 회의실에서 사장된 음료수가 1000 가지도 넘을 겁니다.”

요즘 김 팀장은 팀원들에게 잔소리를 하면 1년 전 망고 주스를 개발할 당시의 일들이 떠오른다.

기획팀이 지난해 1월 개발에 들어간 망고 주스는 시장에 내놓은 지 11개월만에 2억4000만캔(1000억원어치)이 팔린 제품. 국민 1명 당 4캔 정도를 마셨다는 얘기다. 팀원 6명은 이 제품이 나오기 여섯 달 전부터 해외로 전전하며 ‘원료 구하기 전쟁’과 함께 ‘설득 작업’을 벌이느라 진땀을 뺐다.

▽“우리는 시장개척단”=롯데칠성 음료기획팀은 중앙연구소가 만든 시제품을 시장에서 테스트한 뒤 신제품의 시장성 여부를 판단하는 부서.

김 팀장은 “중앙연구소가 시제품에 구연산 설탕 향료 등을 다르게 섞어 수백 가지 맛을 만드는 ‘맛의 설계사’라면 음료기획팀은 소비자 취향에 맞는 맛을 찾아내 시제품을 시장에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망고 주스의 상품 가능성에 눈뜬 시점은 2002년 7월. 당시 김 팀장은 서울의 한 편의점을 들렀다가 수입된 망고 주스가 국산 캔 음료인 ‘갈아만든 배’와 비슷한 수준으로 팔린다는 말을 판매 사원으로부터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상품 개발에 나설 수 없었다. 롯데칠성이 94년 1.5L짜리 가정용 망고 주스를 시장에 내놨다가 철저한 외면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팀원들은 줄기차게 “해외여행과 연수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이 늘어나 국산 망고 주스 개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세 달간 수입 망고 주스의 매출 실적을 더 분석한 뒤 회의를 열었지만 토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월 초까지 개발 여부를 결론내지 못했던 기획팀은 연구소가 만든 10여 가지 주스 시제품을 편의점으로 가져가 고객 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설문에 참여한 고객 대다수가 과즙이 10% 들었든 25% 들었든 ‘모두 좋다’는 것.

▽신제품 생산 우여곡절=망고 주스 시제품은 사전 시장 조사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시장에 나오기 직전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열대 지역에서만 나는 망고는 지역마다 맛이 다르고 원료의 품질도 천차만별인데다 대량 구매가 어려웠다. 신제품 생산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던 순간이었다.

김 팀장은 원료를 찾아내기 위해 팀원들을 인도 멕시코 필리핀으로 보냈다.

“한 달 동안 연구소 원료 분석팀원과 함께 인도 출장을 다녀온 팀원들에게 같은 곳을 다시 가라고 하니 다른 곳에 보내달라고 사정을 하더군요. 인도에서 한 달 동안 망고 맛을 보느라 전부 배탈이 났다는 것입니다.”

대량 생산 경험이 없다보니 문제가 또 나타났다. 기획팀이 필리핀에서 1000만캔을 만들 수 있는 원료를 겨우 구하고 나자 공장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온 것.

당시 롯데칠성이 만들던 델몬트 주스는 냉동된 농축 원료를 들여와 물에 녹여 주스 원액을 만드는 것이 작업 공정의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망고 주스는 수입국 현지에서 망고 액체 원료를 그대로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수송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원액을 물과 배합하는 작업도 몇 배나 힘들었다.

“작년 2월부터 보름 동안 공장에 매일 나가 현장 간부와 작업자들을 설득한 뒤에야 생산라인이 돌아갔습니다.”

▽날개 단 신제품=지난해 3월 본격 생산된 망고주스는 그 다음 달에 40억원어치가 팔리더니 5월에는 80억원, 6월 110억원, 8월 140억원 등 날개 돋친 듯 시장으로 나갔다. 5월에는 페트병에 포장해 할인점에 보내려 했으나 주문 물량을 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망고가 캔에 담겨 원료의 본고장인 동남아로 수출되는 것을 본 뒤에야 손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김 팀장에게 180ml 캔과 1.5L 페트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냐고 물었는데 예상외로 대답이 빨리 나왔다. 망고 원액은 색깔이 너무 짙어 페트병에 넣을 때는 캔보다 물을 많이 타기 때문에 캔에 든 음료가 더 맛있다는 것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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