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고로의 역습…원자재 파동여파 철강-車업계 지위 역전

  • 입력 2004년 3월 2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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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스(GM) 구매 본부장이 비밀리에 일본을 방문했다.

신일본제철과 JFE스틸 등 대형 고로(高爐) 업체와의 교섭 때문이었다.

일본의 철강업체들은 “예전 같으면 우리가 미국에 가도 만나주지도 않던 인물”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구매 본부장은 고로업체를 돌며 “우리 쪽에 우선적으로 강재(鋼材)를 제공해 달라”고 간청했다. 고로업체들은 한결같이 즉답을 회피했다.

오랜 기간 자동차 메이커에 납품하는 것을 경영의 지상과제로 삼아온 일본 고로업체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일본 경제전문 주간지 ‘주간동양경제’는 최근호에서 ‘고로의 역습이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최근 세계적인 원자재 대란 속에 달라지고 있는 고로업계와 자동차 메이커간의 역학관계를 특집으로 다뤘다.

▽고로업체의 ‘복수’=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의 강재 소비량은 2001년부터 3년 연속 연 20% 이상의 놀라운 성장을 지속했다. 그 결과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연간 7억t 선이었던 세계 조강생산량은 2002년에 9억t을 돌파했다.

최근 10년간 생산량을 줄여왔던 일본 철강업계에도 이제는 능력을 초과하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 고로업체로서는 ‘복수의 시기’다. 고로업체들은 99년 당시 닛산자동차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카를로스 곤이 납품업체 수를 줄이면서 가격 인하 혈전을 벌였다. 큰 폭으로 가격을 내린 신일본제철은 납품량을 크게 늘렸으나 이 여파로 자동차용 강판은 t당 1만엔(약 10만원) 이상 폭락했다. 이른바 ‘곤 쇼크’였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 말부터 자동차 메이커와 가격 협상을 시작한 고로업체들은 적어도 t당 5000엔은 인상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거인의 맞대결=고로업체들은 현재 가격 인상 협상은 어디까지나 부당한 손해를 시정하는데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한 고로업체 간부는 “올해 가격교섭은 절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혼다, 닛산자동차는 올해 1·4분기(1∼3월)에 역대 최고 수익을 달성할 전망이다.

강재 가격 인상은 이 같은 흐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 자동차 메이커들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강재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어 고민하고 있다.

고로업계의 고민도 없지 않다. 중국의 폭발적인 철강수요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가격 협상 과정에서 관계를 훼손하면 먼 훗날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양측의 대표선수인 도요타와 신일본제철의 교섭이 조만간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일본 철강업계는 이번 교섭 결과가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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