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 ‘문화의 긴잠’ 깨어나다…중년의 지갑 활짝 열려

  • 입력 2004년 2월 20일 18시 43분


4050세대 ‘문화 슬리핑 그룹’이 새로운 문화향수층으로 등장했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나온 ‘아줌마 관객’들이 로비에서 흥겨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4050세대 ‘문화 슬리핑 그룹’이 새로운 문화향수층으로 등장했다.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나온 ‘아줌마 관객’들이 로비에서 흥겨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3일 밤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이 끝나고 주연배우들의 인사와 함께 ‘댄싱퀸’ ‘맘마미아’ ‘워털루’ 등 1970년대 ‘아바’의 히트곡들이 울려 퍼지자 객석을 메운 40, 50대 중년 관객들이 벌떡 일어나 손뼉을치고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요즘 이곳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진풍경이다.

올해 새해 벽두를 강타한 문화계의 화두는 ‘4050세대의 힘’. 40, 50대 중년관객들은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영화 ‘실미도’와 이를 바짝 뒤쫓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성공에 단단히 한몫했다. 게다가 20대 관객들만 찾던 뮤지컬 공연장에도 ‘맘마미아’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중년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등장해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문화계에서 이른바 ‘슬리핑 그룹(Sleeping Group)’으로 불려 온 30대 중반∼50대 관객들. 마침내 잠자고 있는 잠재적 문화소비층이 ‘긴 동면’에서 깨어난 것일까.

● 깨어나는 ‘슬리핑 그룹’

“아내의 친구가 가자고 해서 생전 처음 뮤지컬을 보러 왔습니다. ‘아바’의 음악은 우리 세대면 누구나 귀에 익으니까 저절로 흥이 나고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요.”(조병렬·53·서울 강남구 대치동)

뮤지컬 ‘맘마미아’는 잘 기획된 ‘추억상품’. 예술의 전당 로비에는 머리 희끗희끗한 노신사와 단체 관람하는 계모임 아주머니들이 눈에 띈다. 예술의 전당측이 관객 출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40대 이상의 중장년 관객 비율은 프리뷰 기간(첫 7회)엔 10%에 불과했으나, 4주 만에 45%를 넘어섰다. ‘와이키키브라더스’도 30대이상 중장년 관객이 60%를 차지한다.

영화 인터넷 예매사이트인 ‘맥스무비’의 예매관객 중 40대 관객층은 평균 4%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화 ‘실미도’의 경우 평균 12%(설 연휴 기간 20.2%), ‘태극기 휘날리며’도 10%대를 차지하는 등 다른 영화보다 월등히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영화계에선 40대 이상이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극장을 찾은 40대 관객이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관계자는 “극장 수가 많지 않은 지방에서는 ‘실미도’를 보기 위해 중년층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영화관을 찾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4050세대의 감수성을 건드려라

문화계에서는 경제력이 있는 4050세대의 ‘약진’을 보면서 이들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작품이 나올 경우 언제든 ‘흥행폭발’의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영화에서 500만명 이상의 ‘대박’이 터지려면 40대 이상 관객층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 특히 요즘의 4050세대는 악극처럼 ‘그들만의 놀이’보다 젊은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영화나 뮤지컬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예전의 중년세대와 차별화된다. 영화직배사인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의 김상일 사장은 “영화업계에서는 과거 18∼23세이던 핵심공략층(core target)을 15∼30세로 넓히고 있다”며 “10대가 입시에 더 매달리고 중장년층이 극장을 자주 찾게 되자 핵심관객이 더 높은 나이대로 옮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 4050세대는 경제력이 있지만 자녀들에게 헌신하느라 정작 자신을 위한 문화생활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중년층은 ‘사회문화적 이슈’에 적극 참여하려는 뜻에서 문화향유에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뮤지컬 ‘맘마미아’ 공연이 끝난 뒤 중년층 관객들이 1970년대를 풍미한 그룹 ‘아바’의 히트곡에 맞춰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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