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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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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기업인들 호출하여 권장사항이다 뭐다 하는 말장난을 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정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큰 밑그림을 고민하라.”
동아일보의 인터넷매체인 동아닷컴 웹사이트에는 1일 저녁부터 3일까지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강 위원장이 이학수(李鶴洙)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을 만나 삼성전자를 그룹에서 분리할 것을 ‘권장’했다는 기사가 나간 뒤였다.
파문이 확산되자 공정위는 2일 해명자료를 내고 “이 문제를 공정위가 검토했거나 개별 기업에 대해 촉구·권장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해명이 맞는지, 오마이TV에 녹화된 강 위원장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보자.
“이학수 본부장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디다. ‘삼성은 절대 못합니다.’ 지주회사를 할 수 없다. (중략) 그래서 내 얘기는 첫째는 의무적으로 하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권장하는 것뿐이지. 할 수 있으면 하라는 것이고. 그리고 지주회사 말고 다른 형태로라도 현재 체제에서는, 후진적인 지배구조에서는 새로운 데로 발전을 좀 해라. 다른 방법이 있지 않느냐.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삼성전자처럼 세계적인 회사라면 독립기업화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나머지 조그만 그룹은 서브그룹으로 지주회사를 몇 개씩 나눠서, 서브지주회사도 가능한 것 아니냐. (중략) 그런 얘기를 제가 했습니다.”
강 위원장이 스스로 ‘권장’이라는 표현을 썼는데도 ‘촉구·권장’이 아니라면 뭘까.
참고가 될 만한 예를 하나 보자.
서울지법은 모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토록 SK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기소된 이남기(李南基) 전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해 지난달 10일 유죄를 선고했다.
일반인이 기업에 시주나 헌금을 권했다면 말 그대로 권유이고 죄가 될 리도 없다. 그러나 권유한 당사자가 공정거래위원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공정위는 계좌추적 등을 통해 부당내부거래를 조사할 권한을 갖고 있다. 또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독점 및 공정거래에 관한 정책도 입안(立案)한다. 이런 공정위를 거느리는 위원장이 기업 관계자에게 직접 한 이야기라면 아무리 권장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도 ‘압력’이 되기 십상이다.
공정위 해명자료를 보면 이런 구절도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 스스로가 선택·결정해 나가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당연한 말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고 공감하는 이런 상식을 강 위원장은 왜 몰랐을까.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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