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SKT영향력 약화될듯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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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가 ‘외국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SK㈜가 최대주주인 SK텔레콤(SKT)의 경영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외국계 펀드인 크레스트 시큐러티스는 15일 현재 SK㈜ 지분을 14.99% 갖고 있다. 0.01%만 더 사면 정보통신사업법에 따라 SK㈜는 외국기업으로 분류돼 현재 갖고 있는 SKT 주식 일부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골드만삭스증권은 이날 “크레스트가 0.01%라는 지렛대를 이용해 SK㈜의 경영에 적극 참여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다만 SKT와 SK그룹의 ‘연결고리’는 다소 느슨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의결권 없는 지분, 누가 받아줄까=정보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외국법인은 SKT의 지분을 49%까지만 가질 수 있다. SKT의 외국인지분이 40.1%인 만큼 SK㈜는 8.9%(49%-40.1%)를 제외한 11.95%(20.85%-8.9%)를 6개월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이 지분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사용되기는 어렵다. 수조원대의 자금력을 동원할 주체도 마땅치 않다. ‘외국인투자제한’ 때문에 외국인이 인수할 가능성은 더 낮다.

3대 주주인 포스코(6.8%) 등 우호세력에 지분을 넘기는 방안도 거론된다. 그러나 포스코의 외국인 주주는 지금도 끊임없이 SKT지분을 팔라고 요구하고 있다. LG투자증권 정승교 애널리스트는 “자금력 있는 대기업이 경영권이 보장되지 않은 지분을 기꺼이 인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현실성이 높은 방안은 SKT가 자사주로 사는 것. SKT의 자금력으로 약 8.4%(SK글로벌의 지분 제외)를 확보할 수 있다. 현대증권 서용원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 매입한 물량만 자사주 소각에 사용할 수 있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SK그룹이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SKC&C 등 계열사를 동원해 SKT 지분을 살 것으로 내다보지만 자금력을 고려하면 현실성은 낮다.

▽경영권이 바뀔 가능성은 낮지만…=하지만 모든 시나리오는 ‘매각’의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크레스트가 실익이 없어 15% 이상을 획득할 가능성이 낮다. 15%가 넘어서면 SK㈜가 SKT의 지분을 무조건 팔아야 하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가 줄어든다. ‘적대적 M&A’가 목표라면 최대 36.9%가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정보통신사업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도 문제다. 시행령은 ‘6개월 이내에 시정(매도)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 매각을 강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골드만삭스증권은 “정부가 ‘외국인 지분 49%’의 제한을 없앨 수 있다는 기대로 SK㈜가 매각을 미룰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들은 “크레스트가 14.99%의 지분을 확보한 채 멈추더라도 SKT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SK그룹과의 ‘연결고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포스코, 백기사? ▼

경영권 위기에 빠진 SK텔레콤의 3대 주주(6.84%)인 포스코가 ‘백기사’ 역할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기사 역할론’은 소버린이 SK㈜의 지분을 추가 매입, SK㈜가 외국기업으로 분류될 경우를 전제로 한 것. SK㈜가 보유 중인 SK텔레콤 지분 중 일부가 의결권을 제한 받더라도 우호 주주인 포스코가 의결권이 없어진 지분 12.81%와 SK텔레콤 자사주 10.23%를 사들이면 SK텔레콤의 경영권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논리다.

SK㈜는 15일 포스코에 백기사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포스코 윤석만 홍보담당 전무 역시 “SK㈜로부터 이와 관련한 어떤 요청도 받은 적이 없다”며 “내부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양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궁지에 몰리면 포스코의 백기사 역할론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만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포스코의 사업다각화 전략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 내부적으로도 코오롱과 신세기통신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다 이동통신 사업에서 물러났던 아쉬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포스코가 적극적인 백기사 역할에 나서 SK텔레콤 주식을 10%만 추가 매입하려 해도 1조6000억원가량의 현금을 동원해야 하는 만큼 국내외 주주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소버린의 진짜 속셈은…▼

SK㈜의 최대주주로 떠오른 크레스트 시큐러티스와 그 모(母)회사 소버린 자산운용의 ‘속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당초 제기됐던 SK㈜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은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이 풀리면서 경영권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돼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소버린이 SK텔레콤을 지렛대로 한국의 법제도를 교묘히 파고든 ‘변형 그린메일(Greenmail)’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변형 그린메일의 가능성=‘그린메일’은 원래 경영권이 불안한 기업의 지분을 사들인 뒤 M&A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해당 회사에 주식을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행위. 하지만 이번에 제기되고 있는 가능성은 SK㈜의 경영권이 아닌 SK텔레콤에 대한 지배력을 지렛대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변형된 그린메일의 형태로 볼 수 있다.

14일 현재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14.99%를 보유한 크레스트가 1억6000만원 정도(14일 종가 기준)만 주식을 더 사들여 지분을 15%로 늘리면 외국인의 참여를 제한하는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 때문에 SK㈜는 SK텔레콤의 주식 20.85%를 보유하고도 8.9%밖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대 계열사인 SK텔레콤의 지배력을 잃는다는 것은 이미 그룹 모기업인 SK글로벌이 채권단 관리상태에 빠져 있는 SK그룹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일. 이런 약점을 틈타 SK㈜ 등 그룹 계열사에 주식을 비싸게 되사도록 요구할 수 있고 무리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SK계열사가 주식을 인수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런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크레스트는 한국의 재벌기업 시스템의 약점을 철저히 분석하는 치밀한 작전을 짠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펀드들이 오로지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SK㈜, “크레스트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하지만 이 같은 그린메일 가능성이 과도한 억측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단 14.99%라는 지분이 현재 SK계열사들의 사정을 볼 때 쉽게 되팔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는 것. 또 SK㈜ 등이 최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소액주주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지배력 유지를 위해 그린메일에 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SK㈜의 최고재무책임자인 유정준(兪柾準) 전무는 “크레스트측이 지분매집을 14.99%에서 멈춘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면서 “크레스트가 한국에 투자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법률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이 이상의 지분을 보유할 때 외국인이 한국에서 부닥칠 수 있는 법률적 제약 등을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무는 또 “소버린자산운용이 장기투자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여 이익을 내겠다고 밝혔으며 SK텔레콤에 대한 SK㈜의 지배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크레스트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SK글로벌, 추가 자구안 제출 미뤄 ▼

SK글로벌이 15일까지 채권단에 내겠다던 추가 자구안의 제출을 무기한 연기했다.

SK글로벌은 애초부터 추가 자구안을 제출키로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자구안을 기다리던 채권단과 신경전을 벌였다.

15일 SK글로벌 채권단에 따르면 SK글로벌은 이날 채권단에 추가 자구안 제출을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제출할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채권단 관계자는 “SK글로벌의 재무담당 임원이 1일 채권단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2주일 내에 외부회계 감사 결과 드러난 4700억원의 추가 부실에 따른 2차 자구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자구안에 대한 계열사간 의견조율을 끝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SK글로벌의 부실이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어서 SK㈜와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들의 지원 없이는 SK글로벌의 자력 회생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채권단은 △SK글로벌이 갖고 있는 주유소를 SK㈜가 시가에 매입하고 △SK텔레콤은 SK글로벌이 보유한 SK텔레콤 주식을 자사주 형태로 사들이는 한편 두루넷전용회선망도 적정가에 매입하는 등 SK글로벌의 2차 자구안에 구체적인 계열사 지원방안이 담기기를 기대해 왔다.

이에 대해 SK글로벌은 “처음부터 2차 자구안 제출은 예정돼 있지 않았으며, 채권단과 SK글로벌 사이에 ‘의사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같다”고 주장했다.

1일 채권단 운영위에 참석한 재무담당 임원이 채권단으로부터 추가부실 및 주유소 매각 등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자 “지금 당장 대답할 수는 없고 2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정리하면서 계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는 것.

SK글로벌측은 “앞으로도 추가 자구안을 낼 계획이 현재로선 없다”고 설명했다.

채권단은 “이 같은 SK글로벌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으며 법정관리나 청산으로 갈 수도 있다”며 SK를 압박하고 있다.

확실한 자구방안에 대한 SK와 채권단간 협상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채권단이 SK글로벌 소유의 주유소를 LG정유 등 SK㈜의 경쟁사에 매각할 경우 SK㈜의 영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

SK글로벌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SK㈜는 SK글로벌로부터 받아야 하는 2조원 규모의 매출채권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한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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