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와 樂]'맥주 소믈리에' 조은현 "화장도 못해요"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7시 14분


OB맥주 이천공장의 양조기술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맥주 소믈리에(맛 감별사) 조은현(曺銀賢·32·사진)씨.

1988년 백화양조에 입사해 1996년 OB맥주로 옮기는 동안 1000여병의 술을 마셔왔다는 그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여성 술박사이다.

조씨의 임무는 회사의 맥주 제조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일이다.

맥주 원료인 맥아의 입고부터 숙성과 제품출하, 폐수처리까지의 전 공정을 둘러보고 특히 모든 맥주 완제품의 맛이 동일하도록 관리한다.

“학창시절의 남자 친구들은 술에 둘러싸여 일한다고 하면 모두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요. 하지만 제품으로서의 술은 그리 간단치 않아요.”

그녀는 매주 세 번 이상 맥주의 맛을 혀와 눈, 코로 음미하는 관능 검사를 한다.

특정한 향과 맛을 머릿속에 기억시키기 위해 술이 아닌 특수 시음료를 반복해서 마신다. 관능 검사 때는 화장도 하지 않는다. 화장품 향기가 맥주 향기를 맡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

이렇게 훈련된 감각들은 실제 맥주 시음검사에서 OB맥주와 다른 경쟁사 맥주의 차이를 찾아내고 같은 제품의 미세한 맛의 변화도 읽어낸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술을 담그셨어요. 그 옆에서 보아온 할머니의 정성과 술맛에 반해 이 길을 택했죠.”

거의 매일 조금씩이라도 술을 마신다는 그녀의 주량은 맥주 2000∼3000㏄ 정도. 10여년의 술 경력에 비하면 그리 많지는 않다.

“인간이 먹고 마시는 많은 것 중에 술처럼 ‘철학’까지 논하는 음식은 많지 않아요. 그만큼 술은 생각하며 신중히 마셔야 합니다.”

그녀의 음주 철학은 ‘편안함’이다. “최근 연말연시를 맞아 폭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진짜 술맛을 안다면 술과 친구가 돼야지 술과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조씨는 송년회 음주요령에 대해 △안주를 충분히 먹으면서 마실 것(다만 술살의 주범은 안주라고 덧붙였다) △술의 종류는 되도록 한 가지로 할 것 △여러 종류의 술을 마실 때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것에서 높은 것 순으로 마실 것 등을 충고했다.

이천〓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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