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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9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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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협의회는 여신지원본부장과 리스크 관리본부장 등 당연직 위원 2명과 은행장이 임명한 위원 5명(기업고객본부장, 기업금융단장, 기업개선팀 부장, 기업여신팀 부장, 개인여신팀 부장)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위원들 가운데 몇 명이 “A사가 담보를 제시했지만 미래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평가하는 ‘현금흐름 창출능력’이 부족하다”며 반대했다. 결국 여신협의회는 A사 대출을 부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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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신용등급 1∼3등급 신용대출 500억원 이상 △4등급 신용대출 400억원 이상 △5등급 담보대출 300억원 이상 △6등급 담보대출 200억원 이상은 반드시 여신협의회를 통과하도록 했다. 이 같은 여신심사제도는 현재 모든 은행에서 실시하고 있다.
▽은행권의 달라진 시스템과 관행〓은행들의 가장 큰 변화는 여신부문에서 나타났다. 은행들이 외환위기를 맞으며 치명타를 맞은 것은 한보 기아 대우그룹을 비롯한 부실대기업 여신 때문. 이제는 은행장이 배제된 여신협의회를 만들어 외부압력을 차단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7월 말 현재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322개 금융기관 임직원과 대주주 4478명에 대해 1조2283억원의 부실책임을 가려내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러다 보니 지금은 오히려 소극적 기업대출이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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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 나동민(羅東敏) 금융팀장은 “부실여신에 대해 벌칙을 강화하면서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위험관리가 아니라 위험회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대우 및 현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대출은 아예 기피하고 앞다퉈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소매금융에 치중해 기업금융 기능이 없는 ‘반쪽은행’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자산규모 200조원의 국민은행이 출현하면서 신한-하나은행도 합병을 시도하며 대형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은행산업이 3, 4개 대형은행 위주로 재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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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정권실세들의 압력으로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등 특히 국책은행의 여신관행은 구태(舊態)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재무제표의 눈부신 약진, 그러나 언제까지…〓15개 시중 및 지방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97년 말 7.0%에서 2002년 9월 말 10.6%로 높아졌고 자기자본도 18조1000억원에서 40조5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금융감독원 정성순(鄭成淳) 은행감독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10개가 넘는 은행이 퇴출당하고 은행원의 3분의 1이 퇴직하는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은행들의 건전성은 높아졌다”며 “부실채권비율만 보더라도 99년 말에는 13.6%에 이르렀지만 2002년 9월 말 2.4%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97년 이후 계속 적자를 보던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고도 지난해 5조3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데 이어 올들어 9월 말까지도 5조4000억원의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금융연구원은 은행의 높은 수익성이 내년에도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이익기여도의 상당부분을 차지한 카드와 가계대출 수익이 연체율 증가와 감독당국의 규제로 인해 크게 떨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보험과 증권, 아직 멀었다〓97년까지만 해도 보험사의 최대목표는 수입보험료를 높이는 것이었다. 이처럼 양적 팽창에 주력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아 11개 생명보험사가 자산부채양도(P&A) 방식으로 문을 닫았다. 또 98년부터 시장금리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과거에 열심히 팔았던 확정 고금리 저축상품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금리 역마진(예정이율-자산운용수익률)으로 수조원의 손실을 냈다.
보험사들은 뒤늦게 사업비 절감, 고금리 저축성상품 판매 중단, 주식투자비중 축소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외환위기 이후 큰 변화가 없는 분야는 증권. 기본적으로 수익의 대부분을 매매수수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280포인트까지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가 ‘바이 코리아(Buy Korea)’ 열풍으로 1200선까지 급등하면서 증권사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 수익구조의 다변화 등 질적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최근 주가가 다시 600대로 떨어지며 증권사들은 다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게 됐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국제경쟁력부터 갖춰라
글로벌化 뒷짐…투자은행 수수료 '그림의 떡'
삼성카드는 지난달 홍콩에서 카드자산을 담보로 4억달러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다. 이때 주간사를 맡았던 곳은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영국계 HSBC.
발행금리는 런던은행간 금리(리보)+0.55%로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ABS 발행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삼성카드는 이처럼 HSBC의 공신력을 빌려 성공적으로 ABS를 발행하는 대신 엄청난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다.
통상 ABS처럼 담보가 확실한 채권의 경우 주간사가 챙기는 수수료는 발행금액의 0.3∼0.5% 수준. 리스크가 높은 해외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하면 수수료가 2∼3% 수준으로 올라간다. 10억달러의 DR 발행을 도와주는 투자은행이 2000만∼3000만달러의 수수료를 챙기는 셈이다.
이처럼 한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주식 또는 채권을 발행할 때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는 주간사 선정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주간사를 맡을 만한 인력이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곳이 없기 때문.
골드만삭스, UBS워버그, 살로먼스미스바니, 메릴린치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은 전세계 곳곳에서 주식이나 채권발행, 인수합병(M&A) 중개 등을 통해 엄청난 수수료를 벌어들인다.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 부실을 털어내기도 급했던 한국의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해외에 나가 유수한 투자은행과 경쟁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반박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할 때도 대부분 외국의 투자은행들이 주간사를 맡는다.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는 발행 회사와의 특수관계 덕분에 컨소시엄에 참여, 수수료 일부를 챙길 뿐이다.
다행히 국내 은행들은 최근 들어 해외 진출이나 다양한 수익원 개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최근 투자은행 업무를 확대해 수수료 수입을 늘릴 계획을 밝힌 우리은행 이덕훈(李德勳) 행장은 “국내 은행들의 수수료 수입은 전체 이익의 10% 안팎에 불과하다”며 “예대마진을 통한 이자 수입과 수수료 수입의 비중을 궁극적으로 5 대 5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올들어 10월까지 우리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3165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2조3855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2%에 불과했다.국민은행은 내년에 외국은행과 합작으로 중국 인도 등에 진출, 현지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금융연구원 권재중(權才重) 연구위원은 “아직 외국에 나가 경쟁할 만한 자금력이나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지만 국내 시장에서 이뤄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신디케이트 론, 채권 인수업무 등에 적극 참여해 노하우를 축적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향후 구조조정 어떻게
수시 합병-퇴출 "은행 3∼4개만 살아남을 것"
“앞으로 은행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정부의 일률적인 방향제시는 없다.”(금융감독위원회 김석동·金錫東 감독정책1국장)
“보험 증권 카드 신협 상호저축은행 등 금융업체에 남아 있는 구조조정의 특징은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금감위 이두형·李斗珩 감독정책2국장)
금융권 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금감위의 두 주요 국장은 남아 있는 금융 구조조정의 큰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 구조조정의 커다란 그림은 이미 그려졌기 때문에 앞으로의 구조조정은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합병과 퇴출 등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으로 간다는 뜻이다.
앞으로 국내 은행은 국제경쟁력을 갖춘 3, 4개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의 힘’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다.
금융?П맙?최공필(崔公弼) 박사는 “지금도 은행은 물론 각종 금융회사가 ‘보호된 환경’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은 외환위기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며 “보호막 자체가 국민세금인 만큼 보호막은 없어지게 마련”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자발적인 구조조정 의지가 없다는 것은 금융권 구조조정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특히 카드 저축은행 신협 등은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업종으로 꼽힌다.
이들 업종에 속한 금융업체들은 당국이 제시하는 재무건전성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즉시 경영개선명령 등을 받아 구조조정 대상으로 편입된다.
정기홍(鄭基鴻)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최근 115개 신협에 영업정지를 내렸지만 이 같은 일괄적인 금융회사 퇴출작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일정수준 이상의 건전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금융회사들은 스스로 합병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 구조조정의 3대 방향▲
1. 부실 금융기관 상시 정리
⇒재무구조개선을 추진하되 경영정상화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퇴출(정리)
⇒특히 부실한 상호저축은행과 신협 등은 정상화가 안되면 즉시 정리
2. 금융기관 대형화-전문화 추진
⇒대형화하기 어려운 중소규모 금융기관은 소매금융 및 중소기업 금융으로 특화시키거나 지역밀착형으로 전문화
3. 정부소유 은행은 조기에 민영화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