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현대상선 4000억 대출서류 조작의혹 은행계 반응

  • 입력 2002년 10월 4일 18시 51분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당좌대출 받으면서 작성한 대출서류들이 조작됐다는 의혹과 관련, 금융계는 대출서류에 법인 인감과 법인대표의 자필 서명이 없으면 ‘사실상 무효(無效)’라는 반응을 보였다.

은행 관계자들은 4일 “산은이 4000억원을 빌려주고도 영수증에 차입자의 서명을 받지 않은 것은 은행 관행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차입자가 직접 서명하지 않은 대출서류는 조작 의혹이 생길 수 있고 대출 사실을 부인하면 효력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차입자가 돈을 빌린 뒤 차입 사실을 부인하는 다툼 때문에 은행은 많은 소송에 시달린다”며 “은행이 객관적인 대출 사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차입자가 끝까지 부인하면 십중팔구 소송에서 진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수백만원의 소액대출 여부를 심사할 때도 대출서류 기재항목에 빈칸이 없는지 철저하게 살피는데 거액 대출서류가 허점투성이인 것은 산은이 대출 절차와 심사에 대한 규정을 어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은행 감독업무를 맡고 있는 한 관계자도 “은행 검사 때 대출서류에 차입자의 서명이 없으면 이를 반드시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한다”며 “사실이라면 당시 대출관계자들은 문책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현대상선 대출서류의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법적 효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관행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산은은 “대출서류에 현대상선 대표 서명이 빠졌고 사업장 소재지가 없는 다른 직인이 사용됐지만 함께 제출한 인감증명서에 회사 상호와 소재지 등이 적혀 있다”며 “다른 대출서류에서도 관행상 서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당좌대월약정서의 대월한도에 4000억원을 ‘금 사십억원정’으로 잘못 기재한 데 대해서도 “명백한 실수이지만 법적 효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대상선이 2000년6월5일 당좌대월 4000억원을 신청한 뒤 6월7일 대출 승인을 받을 때 낸 ‘당좌대월약정서’와 ‘융자금 영수증’에는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의 서명이 없고 사업장 소재지가 없는 전혀 다른 명판이 찍혀있는 등 허점이 많아 조작 의혹이 일고 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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