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술로 해프닝이 많은 사람인데 아이가 크면서 절제하려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꼽아보면 일주일에 2, 3차례는 술자리를 갖게 됩니다.
오늘 보실 광고는 다국적 광고회사인 레오버넷이 만든 태국건강증진협회의 음주운전방지 캠페인입니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만약에…’라는 가정입니다.
만약 음주운전이 일상화된다면 우리 생활이 어떻게 바뀔까 하는 가정입니다. 음주운전이 일상화된다면…. 생명보험업이 뜰 것이고, 음주운전을 단속할 교통경찰이 엄청 늘 것이고, 단속을 피하는 방법이 더욱 정교해지겠지요. 무엇보다 음주운전으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아내와 아이들도 많아질 겁니다.
이 광고는 자극적인 ‘사망사고’보다는 흔히 있을 ‘부상사고’를 등장시켰습니다. 사진을 보면 변기 칸들이 거의 모두 장애인용입니다. 장애인용이 한두 칸이고 나머지는 모두 일반인용인 요즘 화장실과는 완전히 역전된 구상입니다. 화장실 한 쪽 구석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청소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것이 일상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피는 ‘Just a Normal Day, When Drink Driving is just normal.’(음주운전이 일상이 되었을 때 우리의 일상)
‘발견은 발상 위에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상의 한 단면에 소재만 살짝 바꾼 이 광고는 억지로 짜낸 아이디어보다 훨씬 쉽고 편안하게 이해가 됩니다. 광고를 만들다 보면 자꾸 기발한 것에만 눈이 가는데, 사실 광고를 보는 사람은 쉽고 편안하고 아이디어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딱딱한 데이터 두 개. 2001년 음주운전 사고는 2만4994건이었답니다.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004명과 4만2164명. 2001년 우리나라 15세 이상의 1인당 음주량은 14.4ℓ. 유엔이 ‘국가안보에 위해한 수준’으로 규정한 5ℓ를 훨씬 넘는 수준이지요.
아직은 화장실을 다 장애인용 칸으로 바꾸지 않아도 되지만 이렇게 가다간 이 광고가 ‘가정’한 상황이 모두 일상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오늘 하루쯤은 술을 걸러 볼까요? 아니면 차를 놓고 가든가….이선구·제일기획 시니어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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