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선물]“어디 내놔도 당당 귀한 분께 명품을…”

  • 입력 2002년 9월 4일 17시 11분


《추석 선물이 매장에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바이어들이 최고의 정성으로 마련한 게 있기 마련. 롯데·현대·신세계 백화점의 식품담당 책임자들로부터 들은 최고의 ‘명품 선물’ 이야기를 모았다.》

#“오고초려(五顧草廬) 끝에 팔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한국의 명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선물이 뭐냐고 묻자 롯데백화점 정승인 상품3부문장은 주저없이 고급 한과세트인 ‘청목 연당유어 명품세트’와 ‘청목 민속놀이 한과세트’를 내밀었다.

“한과도 훌륭하지만 이 선물세트의 진가는 함(函)이에요. 원래 사주를 넣는데 쓰이는 거죠. 그냥 팔기 이상해 한과로 속을 채웠을 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나요?”

이 제품이 매장에 진열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다.

“지난해 우연히 청목 김환경 선생의 전통 옻칠 공예제품을 보고 ‘필’이 꽂혔죠.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명품이 되겠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청목 선생은 40여년을 전통 옻칠에 바친 전통 공예인. 운보 김기창 화백이 흔쾌히 자신의 그림을 작품에 써도 좋다고 허락했고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선물로 건네질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하지만 상품화는 쉽지 않았다. 무작정 청목 선생 댁을 방문해 의사를 타진했으나 몇 마디 꺼내기도 전에 돌아온 대답은 ‘노(NO)’. 예술작품을 ‘불경스럽게’ 매장에서 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다섯 번 정도 찾아갔죠. 알고 찾는 이들이 많아야 작품의 진가가 높아진다고….”

결국 정성은 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백화점 내부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300만원 이상이던 제품 가격을 크게 낮췄다지만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

“연당유어가 120만원, 민속놀이가 90만원입니다. 입이 벌어질 정도죠. 또 두 제품을 합해야 100세트에 불과한 한정 물량입니다. ‘매스컴’의 비판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수지가 좋은 물건이 아니죠.”

하지만 한국의 백화점이 한국적 명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는 결국 내부 반발을 누그러뜨렸다.

“정말 귀한 분들께, 특히 외국인에게 드릴 선물로 추천합니다.”

#“30년 전 고향에서 먹던 바로 그 고기 맛입니다”

“명절에 소 한 마리 잡아 온 동네 주민들이 나눠먹던, 도르리 고기라고 아시죠. 바로 그 맛이에요. 이게….”

이 말에 군침이 돌았다. 명절에야 고기 맛을 봤던 시절, 어렸을 때 맛본 고기의 ‘그윽한’ 맛을 평생 잊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현대백화점 본점 이창환 식품팀장은 이번 추석 최고의 선물로 ‘화식한우’(火食韓牛) 프레시육 세트를 꼽으면서 이런 설명을 달았다.

“그 땐 소가 달랐어요. 쟁기 메고 일하는 소였죠. 먹는 것도 달랐죠. 풀도 먹었고 곡식도 먹었고…. 맛이 다를 수밖에 더 있겠어요.”

옛 방식대로 키운 한우 고기라는 것이다. 좋은 형질의 소를 골라 6개월 이상 볏짚 여물과 보리 콩 옥수수 등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해 키워 도축했다. 1㎏에 100만원씩 한다는 일본 고베 지방의 유명한 ‘화우’(和牛)처럼 한국 소고기를 대표하도록 만들겠다는 게 그의 야심이다.

“지난해 추석 때 내놓자마자 다 나가더군요. 공급이 워낙 달리니까요. 충북 옥천과 경기 장호원에 목장을 지정해 1년여 동안 준비했습니다.”

붉은 고기 위에 눈(雪)이 살짝 내린 듯한 마블링(지방의 분포 정도)을 보자마자 최고 등급의 고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먹어보면 압니다. 같은 특상급이라도 일반 한우보다 색깔이 짙고 씹을 때 찰진 느낌이 훨씬 강하죠. 또 필수 지방산 함유량도 높습니다. 그 맛을 더욱 유지하기 위해 아예 냉장상태로 유통하고 있습니다.”

사육할 때부터 초음파 검사로 마블링을 체크하고, 도축한 뒤에도 기준에 미달하면 아예 상품화를 하지 않는다고 이 팀장은 강조했다.

“매장에서 바로 살 수 없고요, 이틀 전에 주문해야 합니다. 일반 한우세트에 비해 5∼10% 가량 비싼데요, 맛은 훨씬 좋습니다.”

3.8㎏ 한 세트에 37만∼38만원.

#“은빛물결처럼 빛이 참 고와요”

“이런 멸치 본 적 없었을 걸요.”

멸치 선물세트인 ‘남해안 얼음 죽방세트’를 내보이면서 신세계 백화점부문 식품매입팀 임대환 부장은 자신만만했다. 갓 잡아 말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빛을 반사시키는 은빛 비늘, 통통한 몸통은 참 맛깔스러웠다.

“때깔 참 좋죠. 이 뿐이 아닙니다. 볼 줄 아는 분들은 다 아시는데요, 우선 곧게 쭉 뻗은 상태로 말려져 있죠, 입도 다들 ‘앙’ 다물고 있습니다. 다른 멸치와 한번 비교해 보면 바로 차이가 납니다.”

원래 멸치는 ‘성 마른’ 물고기. 그물에 잡히면 얼마 안 돼 제 성질을 못 이겨 제풀에 죽어버린다. 또 빨리 상해 바닷가 횟집에서조차 멸치 회는 귀할 정도. 이런 멸치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말린다는 게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통상 멸치는 죽은 상태에서 가공이 들어가요. 살아 있는 상태로 뜨거운 물에 넣으면 입을 벌리고 몸을 구부리거든요.”

입을 벌리거나 구부러진 몸통의 멸치는 하등품. 때문에 멸치를 살아있는 상태로 잡아도 일부러 죽일 수밖에 없다. 선도가 조금 떨어져도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런데 이건 그렇지 않아요. 살아 있는 채로 삶았죠.”

갓 잡은 멸치를 살아있는 채로 공장까지 수송해 얼음물에 ‘기절’시킨 뒤 삶아 건조한 것. 결국 어느 단계에서도 선도가 떨어질 겨를이 없던 셈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노하우가 쌓이지 않으면 개발할 수 없는 비결.

“이 멸치는 가장 맛있다는 남해안에서 잡은 겁니다. 또 고기가 가장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전통어획법인 ‘죽방’(竹防)으로 말이죠.”

그 중에서도 제일 상태가 좋은 멸치만 골라 200세트만 만들었다는 게 임 부장의 말이다.

“1.4㎏이 40만원입니다. 다른 최고급 멸치보다 10% 정도 비싸죠. 하지만 맛은 훨씬 좋습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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