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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16일 2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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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는 마늘협상에서 ‘2003년 1월 1일부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해제’라는 핵심적인 내용을 양국 합의서의 ‘부속서’에 포함시킨 후 협상 결과의 파문을 의식해 협상 결과 발표에서 뺐다는 의혹을 사게 됐다.
또 농림부는 50만 농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중요한 대외 협상’ 내용을 관련 농민단체에도 알리지 않고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마땅히 해야 할 업무를 방치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이런 내용을 모르고 있던 국내 마늘재배 농가는 제대로 대응책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년부터 중국산 마늘의 수입관세가 대폭 낮아짐에 따라 소득감소 등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교부와 농림부의 밀실행정〓한국과 중국이 체결한 합의문 부속서에는 ‘2003년 1월 1일부터 한국의 민간기업이 (추가 관세를 물지 않고 마늘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다’는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발표문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설명도 없었다.
또 외교부와 농림부는 합의 내용이 알려진 16일에도 서로 책임을 상대 부처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외교부 박상기(朴相起) 지역통상국장은 “당시에는 우리측 세이프가드에 대해 중국측이 취한 한 해 5억달러 규모의 휴대전화와 폴리에스테르(PE) 수입금지 조치를 푸는 것이 핵심 관심사여서 부속서의 내용을 ‘부각해서’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 국장은 또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내용이 부속서에 포함된 것과 관련, “통상적으로 세이프가드는 3, 4년 동안 한시적으로 내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합의서 본문에서 우리측 세이프가드가 2002년 말까지라는 말은 2003년 이후에는 세이프가드가 적용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통상에서 기본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협상 과정에 농림부 관계자가 참석했고 합의 내용을 모두 통보했기 때문에 후속 대책을 세우는 것은 농림부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규용(徐圭龍) 농림부 차관은 “합의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외교문서의 내용을 농민들에게 직접 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부 농림부 관계자들은 “외교부로부터 협상 결과를 제대로 통보받지 못했다”고 한때 발뺌하기도 하다 외교부가 협상 결과를 농림부에 통보했다고 거듭 확인하자 합의 내용을 알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마늘재배 농가 피해와 농민단체 반발〓내년부터 중국산 마늘의 수입관세가 대폭 낮아져 마늘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50만여 가구에 이르는 국내 마늘재배 농가의 큰 피해가 우려된다.
또 정부가 그동안 국내 마늘재배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 추진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국내의 연간 마늘 소비량 43만∼45만t 가운데 그동안 세이프가드로 2만∼3만t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산이 내년부터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농민단체들은 보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이전 ㎏당 1300원 수준이었던 국내 마늘의 생산비가 2년 동안 1050원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800원대까지 더 내려가야 중국산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50만여 가구에 이르는 마늘재배 농가의 연간 소득이 세이프가드 종료로 연간 1700억∼1800억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와 농림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자 농민단체들은 관련자들의 문책을 요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성명을 통해 “중국과의 합의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농업환경생명을 위한 WTO 협상 범국민연대’ 등도 성명을 내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와 관련한 합의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다.
▽협상내용이 뒤늦게 알려지기까지 경과〓농협중앙회는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가 올해 말로 끝남에 따라 지난달 28일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 세이프가드 연장을 요청했다.
농림부 등으로부터 협상 내용을 전혀 통보받지 못한 농협중앙회는 국내 마늘재배 농가의 의견을 담아 세이프가드를 2006년 말까지 연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
그런데 무역위는 농협중앙회의 신청을 받은 후 29일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외교부에 관련 신청 사실을 알린 후 “중국측과 2003년 1월 1일 이후에는 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무역위 관계자는 “정부가 협상에 따라 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조사를 벌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무역위는 이 같은 사실을 농협중앙회에 통보하면서 중국과의 협상 내용이 알려지게 됐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