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 추락속 한국 善戰 비결 '전통산업'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29분


이달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대만 경제정책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대만 경제학자 10여명이 찾아왔다.

미국의 정보기술(IT) 경기 추락 등의 영향으로 대만은 2·4분기(4∼6월)에 10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대만 ‘싱크 탱크’들의 방한 목적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한국이 아시아 각국 가운데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은 이유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제전문가들은 토론을 통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은 ‘한국에는 자동차 조선 등 IT 경기와 상관없는 전통 업종들이 아직 비교적 건재했기 때문’이라는 것.

IT 경기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최근 “세계 전체 산업구도와 산업의 ‘위험분산’ 차원에서 한국은 아직 자동차 조선 기계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의 개량 및 개선을 통해 이들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산업정책이 너무 IT, 바이오기술(BT) 등 이른바 ‘미래산업’에 치중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IT 치중 아시아경제 벼랑에 몰려〓IT부문 의존이 큰 대만 싱가포르홍콩등아시아 주요국 경제는 올해 한국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에 몰리면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수출품목이 반도체, 개인용 컴퓨터 등 IT 제품에 집중된 대만은 7월과 8월 수출 증가율이 각각 -25.8%와 -42.5%로 급락하는 등 경제가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린시 대만 경제장관은 최근 “올해 대만 경제는 -2%대 성장에 머물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도 금년 경제성장률이 -3∼-4%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아시아 최고 성장세를 기록했던 홍콩 경제도 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2·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1.7%)으로 추락해 정부측이 경기부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윤상직 수출과장은 “한국이 이들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 것은 반도체 컴퓨터 수출급감의 충격을 자동차 선박 일반기계 품목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KDI 김주훈 박사도 “증시에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한 국가의 산업 포트폴리오가 특정 산업에 치중했다가는 경제가 외부 충격에 너무 취약해진다”고 말했다.

▽특정분야 집중 ‘화전민식 산업정책’의 위험성〓최근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출연 경제연구소에서도 ‘IT, BT, 나노기술(NT) 집중 육성’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신(新)산업정책 방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지낸 양수길 박사는 “한국은 대외무역구조나 지정학적 위치상 ‘급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이용할 것이냐’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며 “중국의 산업구조보다 항상 반보나 한발 정도 앞서가는 산업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그동안 산업정책이 정부가 미래산업을 지정해 국가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체제였고 이런 정책이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첨단산업은 선진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영역이므로 훨씬 어렵다”면서 “국가적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산업정책이 실패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주현 부원장은 “신발과 섬유산업이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밀려 고부가가치화에 실패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주력업종이 첨단산업 육성정책에 밀려 홀대당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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