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합의 은행법 개정안 주요 내용]공적자금 회수 촉진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46분



정부와 여당이 대기업에 대해서도 은행 주식을 10%까지 살 수 있도록 빗장을 풀어준 것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민영화를 촉진하고 공적자금 회수를 서두르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물론 대기업이 보유한 4% 이상 은행주식에 대해선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대기업들이 어떤 형태로든 ‘은행주인’이 될 수 있는 여지는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막상 금융계에서는 당정이 합의한 은행법 개정안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 적지 않다.

▽은행 조기 민영화 겨냥〓정부는 당초 대기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은행 소유지분 한도를 현재처럼 4%로 묶으면서 비금융자본(산업자본) 비중을 25% 밑으로 낮추고 금융전업그룹으로 바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10%까지 지분 보유를 허용한다는 방침이었다. 이처럼 대기업의 은행지분에 신경을 쓴 것은 ‘재벌의 금융지배와 사금고(私金庫)화’를 막는다는 명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럴 경우 현실적으로 은행 주식에 투자하거나 은행 주인이 되려는 대상이 외국인 외에는 별로 없고 ‘역(逆)차별’이나 ‘국부 유출’ 논란이 일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 외환위기 후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영 은행’으로 바뀐 상당수 시중은행의 정부지분 처분에 차질이 생기면 공적자금 회수시기가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은 점도 정부로서는 고민이었다.

정부가 막바지에 은행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을 때 나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은행 민영화를 빨리 진행하라”는 지시도 대기업의 은행소유한도가 당초 정부 초안보다 완화된 중요한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대신 이번 개정안에 은행 대주주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해 대주주 여신합계가 은행 자기자본의 50%를 넘지 않도록 명시하고 다른 은행 대주주와 미리 짜고 ‘교차여신’을 주는 행위도 못하도록 못박았다.

▽어떤 기업들이 은행에 투자할까〓대기업들은 내년부터 ‘산업자본 비율’에 구애받지 않고 투자목적을 내세워 은행 주식을 합법적으로 10%까지 사들일 수 있게 된다. 4% 이상 투자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약을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은행의 경영에 입김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특히 펀드와 연기금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은행 주식 장기투자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뮤추얼펀드의 경우 산업자본의 펀드 투자비율이 4%를 넘지 않으면 은행소유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없다.

대기업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비(非)산업자본 성격이 짙은 동원, 동양, 동부그룹의 경우 ‘계열분리’와 ‘2년 안에 금융전업 전환’ 등의 방법을 통해 은행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교보와 대신 등 금융전업그룹도 은행주식 매입에 관심을 보일 ‘잠재후보’로 꼽힌다.

▽금융계 반응〓이번 은행법 개정안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글쎄…”라는 유보적 반응이 많다. 8월말 공청회 때 나온 초안보다는 진전된 것이지만 이런 정도의 유인책으로는 은행 주식을 적극 취득하려는 재벌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경제관료 출신인 한 금융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긴축경영에 들어가 있어 투자목적으로 은행주식을 보유할 여유가 없다”며 “은행 지분소유 제한을 과감하게 풀고 대주주에 대해 편중여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단장치를 강화하는 쪽에 신경을 더 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부실은행을 사려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 수익성이 뒷받침돼야 이런 조치가 효력을 나타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영해·홍찬선기자>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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