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믿을 것은 역시 현금 뿐" 기업들 유동성확보 비상

  • 입력 2001년 7월 22일 18시 23분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하반기 경제환경이 불투명하다고 판단해 현금 등 ‘즉시 쓸 수 있는 자금’(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금을 마련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수익성이 기대되는 사업에 핵심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이들 대기업은 이와 함께 최근 매출목표와 이익목표를 크게 낮추는 등 연초에 세웠던 올해 경영목표를 1·4분기에 축소조정한 데 이어 또다시 낮출 움직임이다. 세계경기 침체 영향으로 국내 경기가 다시 ‘안개속’으로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화학, 포항제철, SK㈜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하반기에 ‘유동성 확보’와 ‘비용 절감’을 뼈대로 하는 경영전략을 세우는 작업에 나섰다.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등급 올리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회사채 발행규모 3배 이상 늘어〓올 상반기에 한달 평균 1조원 수준에 그쳤던 회사채 발행물량 규모는 이달 들어 3조4000억∼3조8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업들의 현금확보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4분기 중 국내 기업은 모두 18조4450억원의 자금을 조달해 이 가운데 7조1600억원만 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자금을 비축하는 추세는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는 것.

대기업들은 새로 마련한 현금으로 ‘돈이 되는 사업’과 수익성이 높은 ‘신 사업’에 집중 투자한다는 복안이다.

▽투자규모와 비용, 더 줄여라〓삼성그룹은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의 상반기 경영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하반기 투자를 축소하고 각종 경비를 줄이는 긴축경영에 들어갔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6조1000억원에서 5조1000억원으로 줄이기로 했다. 삼성SDI 삼성전기 등 다른 계열사들도 투자 축소에 들어갔다.

LG전자는 지난달부터 경상비를 20% 가량 삭감했고 보유중인 신세기통신주식 260만주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SK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올해 4조6000억원의 투자계획을 세웠으나 자금확보 차원에서 투자규모를 10% 줄였다.

한진 한솔 한화 금호 동부그룹 등도 부동산 매각이나 자산담보부증권(ABS) 등의 유가증권 발행을 통해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신용등급을 올려라〓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기업의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자금마련에 드는 노력과 비용을 절반으로 줄여도 돈 확보가 쉽다”며 “기업들이 신용등급 상향을 기대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의 하반기 만기도래 회사채 규모는 9600억원선. 현대차는 최근 신용등급이 올라 어렵지 않게 회사채 차환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재의 자금사정이 나쁘지는 않지만 경기침체 등에 대비,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원·박원재기자>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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