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美CEO들 실적부진에 봉급 자진삭감

  • 입력 2001년 4월 13일 18시 29분


스티브잡스(왼쪽), 칼리 피오리나
스티브잡스(왼쪽), 칼리 피오리나
미국 기업들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봉급이나 상여금을 반납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다.

컴퓨터 제조업체 휴렛팩커드(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에 받기로 했던 상여금 62만5000달러를 반납했다. 피오리나 회장은 “실적 부진으로 1700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일반 직원의 봉급 인상을 연기하는 상황에서 전체 종업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 온라인증권회사인 찰스 슈와프의 찰스 슈와프 회장은 올해부터 자신의 봉급을 절반으로 깎았을 뿐만 아니라 임원들도 5∼20%씩 봉급을 줄이도록 설득했다. 증시 침체로 지난해 4·4분기 수익이 30% 이상 하락했기 때문이다.이같은 조치는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고 회사를 꾸려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취해졌으나 찰스 슈와프는 경영난으로 결국 13%의 직원을 올해 말까지 해고하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애플 컴퓨터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회장은 97년 심각한 경영부진에 빠진 회사에 복귀하면서 연봉 1달러만 받기로 했다. 주주들에게 회사 정상화에 대한 CEO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잡스 회장 취임 후 실적이 크게 나아지자 지난해 애플 이사회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2000만주의 스톡옵션을 주기도 했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CEO들이 봉급을 반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고 경영자가 먼저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주주들로부터 실적 상승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다. 또한 CEO의 봉급 반납이 투자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일각에서는 기본급을 반납하는 CEO들이 상여금은 그대로 받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이 그렇게 값진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애플 컴퓨터의 잡스 회장은 지난해 기본급이 1달러에 불과하지만 특별보너스로 9000만달러를 받았으며 전용 항공기도 받았다. HP의 피오리나 회장도 상여금은 반납했지만 기본급 210만달러는 그대로 받았으며 주식 200만주도 갖고 있다.그러나 미기관투자가협회의 패트릭 맥건 이사는 “실적이 악화될 때 CEO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급여를 깎으면 직원해고 등 구조조정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을 얻게 된다”면서 “현재까지 CEO가 봉급을 반납한 기업은 20여개에 불과하지만 올해 말까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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