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쾌지나 칭칭..." 콧노래 절로 울산 수출선적부두-현대차

  • 입력 2000년 12월 31일 17시 02분


“미국 뉴욕항(港) 500대, 브룬스윅항 300대, 로스앤젤레스 600대, 포틀랜드 600대,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유럽지역 1500대.”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수출 선적부두. 목적지와 대수가 이처럼 쓰여진 표지를 요즘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시집’갈 곳을 기다리는 자동차는 무려 5만여대.

‘색시’를 모셔갈 큼직한 ‘꽃가마’인 모닝사가호(號), 캡틴호, 모닝브리즈호 등 3척의 대형 자동차 운반선(일명 롤로선)이 항만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배 무게만도 수천t에 달하는 거함이다.

현대자동차 선적부두는 북적대는 시장통처럼 활기로 가득하다. 자동차 운반선에 곧 몸을 맡길 자동차들이 선적부두에 넘치고 또 넘친다. 그도 모자라 옆 재고차량용 부지에도 곧 수출될 차량들이 가지런히 일렬로 늘어섰다.

“신납니다. 내손으로 운반한 ‘얘’들이 전세계 구석구석을 누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흥이 납니다. 제가 요즘 가장 자주 부르는 노래가 뭔지 아세요. ‘쾌지나 칭칭 나네’입니다.”

출 차를 자동차운반선까지 나르는 항운노조 소속 김정상씨(42)도 자못 흥이 나는 목소리로 미국행 모닝사가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열사람이 한 조(組)가 된 이들 자동차 운반책들은 한시간 동안 무려 100여대의 수출차를 롤로선 안으로 밀어넣는다. 롤로(Rollo)는 전설적인 바이킹의 족장 이름.

“차 한대 한대가 모두 일거리라고 생각하면 피곤하지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전혀 안듭니다. 이곳은 내가 자란 부산 자갈치시장보다도 훨씬 생동감있는 땀의 현장이죠. 올해도 제발 이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최용성씨(38)의 기원이다.

현대차 생산공장에 근무하는 직원 중 지난해 일요일을 제대로 쉰 사람은 많지 않다. “일요일 없이 근무해도 좋으니 작년만 같으면 좋겠어요.” 현대자동차 제2공장에 근무하는 송유식(宋裕植·43)씨는 올해도 지난해처럼 휴일에 쉴 생각을 아예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99년 수출물량은 67만 3000대. 2000년에는 88만대를 전 세계로 실어날랐다. 전년대비 무려 30%가 늘어난 것.

“며칠을 쉬었느냐고요? 솔직히 말할게요. 지난해엔 딱 하루, 크리스마스날만 가족과 함께 했습니다. 올해요? 쉬면 좋기야 하겠지만 수출이 더 잘 돼야지요.”

현대자동차는 올해(2001년) 105만대의 수출물량(전년대비 19% 증가)을 계획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자동차를 만드는 근로자들은 아마 단 하루도 못쉬는 일이 벌어질 만도 하다. 싼타페 등 일부 인기차종은 주문을 해도 4,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지 오래다.

“창사 이래 최대생산과 최대 수출을 기록했던 게 지난해였습니다. 다들 의욕이 넘쳐났던 한해였지요. 올해도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입니다.”

현대자동차 차체 2부에 근무하는 유진권(柳震權)차장. “미국이나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생산을 줄이고 사람을 자르고, 자동차 경기가 세계적으로 위축된다고 합니다. 새해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는 얘기인데, 어떻게든 이겨내야죠. 그렇게 어려웠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도 견디지 않았습니까. 우리 국민은 어려울 때 오히려 더 희망을 갖는 열정이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 연휴도 쉴 수가 없습니다만 세계 곳곳에서 돌아다닐 ‘우리 차’를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새해를 맞는 울산 현장은 ‘희망의 땀’으로 그득하다.

<울산〓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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