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채권단 '두목소리'…"법정관리" "부도처리 안해"

  • 입력 2000년 11월 5일 19시 54분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건설 처리와 관련해 혼선을 빚고 있다.

서로 입장이 다른 대목은 제2금융권이 현대건설에 결제요구하는 금액을 부도처리할 것이냐 하는 점과 현대건설에 사전에 출자전환동의서를 받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쟁점이 되는 두 가지 모두 현대건설 처리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어서 자칫 시장에 혼란을 불러올 소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제2금융권 결제자금 부도처리 여부〓현대건설 15개 채권은행은 제2금융권이 현대건설측에 결제를 요구하는 회사채 기업어음(CP) 등 융통어음을 현대건설이 막지 못하더라도 연말까지 부도에 따른 금융제재조치를 하지 않기로 했다.

15개 채권은행은 3일 이같은 내용을 97%의 찬성으로 서면결의를 하고 어음거래규정을 개정해 ‘신용위험평가협약’내의 부칙조항에 넣었다.

채권은행단은 6, 7일 제2금융권까지 참가하는 전체 채권단회의를 개최해 제2금융권 동의를 구할 계획이지만 은행권이 75%에 가까운 의결권을 가져 통과가 확실시된다. 외환은행 이연수(李沿洙)부행장은 “제2금융권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은행권의 동의로 가능하다”며 “제2금융권에서 돌린 자금으로 인해 현대건설이 부도처리돼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재정경제부 진념(陳稔)장관은 5일 “제2금융권이 자금회수에 나서면 현대건설은 곧바로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혀 채권은행단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진장관 등 정부쪽의 발언은 채권단의 합의내용을 잘 모르고 한 것이거나 아니면 현대건설을 압박하기 위한 발언으로 봐야 할 것 같다”며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이 서로 다른 내용을 밝히면 현대처리의 투명성만 떨어뜨릴 뿐”이라고 지적했다.

▽출자전환 동의서 제출 여부〓정부는 현대건설로부터 법정관리 이전이라도 언제든지 감자와 출자전환을 통해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는 출자전환 동의서를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5일 분명히 했다.

그러나 김경림(金璟林)외환은행장은 전날까지만 해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당연히 출자전환이 되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제출받을 필요가 없다”며 “처음에 현대측에 이를 요구했다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철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정부와 채권단은 3일 퇴출기업 발표문에 ‘출자전환 동의서 징구’대목을 집어넣었다가 발표 직전에 급하게 빼는 바람에 2가지 종류의 발표문이 배포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현대그룹측의 로비에 밀린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외환은행측은 “절대 아니며 자체적으로 필요성이 없어 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하루만에 다시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밝힌 것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정부와 ‘그래도 살리려는’ 채권단의 손발이 여전히 맞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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