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업종간 벽 사라져 불안한 기업들

  • 입력 2000년 7월 3일 19시 11분


지난 20여년간 교보문고의 라이벌은 종로서적 영풍문고 등 몇 개 대형서점이었다. 교보문고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경쟁사를 이길까 골몰해왔다. 그러나 디지털경제에 접어들면서 진짜 강력한 적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온라인 서점 100여곳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 특히 막강한 자금력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삼성물산 한솔 CSN SK㈜ 등이 온라인 서점업에 진출하면서 교보문고를 위협하고 있다. e비지니스 전문가들은 “백화점이 고객을 끌어들이기위해 농수산품은 싸게 팔 듯이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 의도적으로 책을 싸게 팔면 서점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기술로 인한 업종간의 융복합화 현상으로 업종간 벽이 깨지면서 “도대체 우리 적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다. 내 업종에 어떤 기업이 갑자기 진입할지, 또 자신이 어느 업종에 진출하지 예상하기 힘들다.

삼성물산 직원들은 70년대말부터 다른 종합상사인 현대종합상사 ㈜대우와 경쟁을 해왔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해 각종 업종에 진출하면서 경쟁상대가 바뀌었다.삼성물산에서 벤처투자를 하는 골든게이트는 창투사, 인터넷방송 두밥은 다른 인터넷방송 벤처기업, 삼성쇼핑몰은 온라인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주요 경쟁상대로 떠올랐다. 이제 다른 종합상사와의 경쟁은 무의미해졌다.

SK그룹은 OK캐시백 서비스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위해 국민비자와 손잡고 회원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최근 휴대전화를 통해 카드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곧 카드회사와 일대 결전을 벌여야할 처지. 오늘의 동맹군이 내일의 경쟁자가 된 것. SK는 또 OK캐시백 서비스를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어 보험사와도 경쟁한다.

대기업은 대기업끼리, 금융업은 금융회사끼리, 벤처는 벤처끼리의 경쟁구도도 깨져가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업종에 뛰어들고 벤처기업이 대기업에 도전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SK㈜는 최근 인터넷사이트 ‘엔카닷컴(www.encar.com)’을 개설, 중고차 매매업에 뛰어들었다. 중고차 매매상들은 연간 매출이 수조원인 정유회사가 설마 자신들의 분야에 들어올지 몰랐다는 반응. SK그룹은 또 리빙OK라는 사이트를 통해 꽃배달 이사 부동산업도 시작했다.

반대로 벤처기업들이 자동차나 각종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자동차 회사와 전자회사의 유통채널을 흔들어놓고 있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김보원(金甫源)교수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가장 큰 적은 다른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전자회사인 소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디지털기술은 업종간 벽을 허물어뜨리고 있다”며 “기업입장에서는 이제 보이는 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 무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