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국제유가…산업계 초비상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08분


국제유가의 고공 행진이 계속되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업종과 수출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처해 있다. 각 기업은 자금난이 심각한 상태에서 유가가 다시 급등하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며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등 고유가시대 대비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가장 울상을 짓고 있는 곳은 석유화학 업계.

중국과의 마늘 분쟁으로 폴리에틸렌 제품의 대중국 수출이 중단된 유화업체들은 고유가와 수출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면서 국내 제품가격이 공급과잉으로 크게 하락해 유가가 오르더라도 제품값을 올릴 수가 없어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한 실정.

교통관련 업종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은 국제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100억∼300억원 안팎의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고유가가 지속되면 수익구조가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항공사측은 전체 영업비용의 12∼15%를 차지하던 연료비용이 고유가가 지속되면 20%를 넘어서게 돼 경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계는 배럴당 1달러가 오를 때마다 선박연료유는 t당 6달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운임에 바로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올해 수요를 당초 내수 145만대, 수출 160만대 등 총 310만대 규모로 예상했으나 국내 휘발유 가격이 1300원대가 되는 등 고유가가 지속되면 하반기 내수가 5만대 이상 감소하는 등 판매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하반기 내수만도 5만대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영업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류 제품 의존도가 높은 섬유업계 역시 원료가격은 오르는데 반해 새한 고합 등 대표적인 화섬업체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인 상태에서 과당경쟁이 벌어져 제품값이 떨어지는 등 채산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삼양사 관계자는 “통상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제품가가 t당 15달러 올라야 하나 과당경쟁으로 오히려 제품가격은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공장 설비를 개선해 생산효율을 높이고 보일러용 연료를 LNG로 교체하는 등의 자구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제철 등 철강업계도 자체 발전소 가동을 위한 중유 등 원료가 상승이 일단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수출에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밖에 조선 부문에서도 선사의 운송 비용 상승 등으로 발주량이 줄어 영업에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고 제지업 및 시멘트업계도 공장 가동에 들어가는 벙커C유 등 에너지 비용 증가에 따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영덕 박사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원가부담으로 작용해 수출업체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교통 및 물류 관련 업체들은 상당한 비용상승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들은 유가와 환율 변화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대응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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