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 문제점]'대마불사'신화 부활조짐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27분


IMF 이후 기업구조개혁의 골간을 이뤄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흔들리고 있다. 제도 자체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지만 실제 이를 운용하는 채권단의 능력이나 감시체계를 소홀히 방치했다는 지적이 많다.

워크아웃 업체인 동아건설의 정관계 로비사실은 최고경영진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 수준임을 여실히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 전문가들은 그러나 도덕적 해이현상 보다도 “워크아웃이 은행권 및 기업들의 보신주의를 부추기면서 ‘대마불사’신화가 되살아날 조짐이 나타나는 게 문제”라며 경영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동경영’의 한계〓98년 동아건설 이후 워크아웃이 적용된 업체는 모두 76개(대우계열 12개사 포함). 이중 3,4개 업체만 기존 경영진이나 과거 대주주의 경영간섭을 완전히 차단했을 뿐 대부분 기존 오너들과 채권단 선임경영인이 ‘공동살림’을 꾸리거나 한시적으로 과거 오너에게 경영권을 인정해주고 있다. 완전 단절할 경우 회사 내부 통제가 어렵기 때문.

서근우 금감위 제2심의관은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워크아웃 기업에서 경영권 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 오너측이 사사건건 신임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트집을 잡거나 투서하는 사태가 벌이지고 동아건설처럼 노조의 힘이 경영진 인선에까지 미칠 경우 후임 적임자 인선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설명.

채권단은 이같은 난점을 해결한다며 한때 전직 은행 임직원들이나 계약직 직원들은 워크아웃 기업의 임원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이성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그러나 “채권단이 능력 인선을 무시하고 미리 담합, 자리를 나누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털어놓았다.

▽타율적으로 이뤄진 워크아웃〓정부는 국내 워크아웃이 채권단과 기업이 주도하는 ‘런던형’이라고 규정했지만 채권단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즉 외국의 경우 ‘기업을 살린 다음 건전화된 여신을 회수하겠다’는 금융권의 자발적인 욕구가 강했던 반면 국내에선 정부가 시장붕괴를 막기위해 채권단을 반강제적으로 워크아웃 틀안에 몰아넣었다는 것.

3월말 기준 76개 워크아웃기업에 대한 채무조정은 계획대비 86%인 86조원에 이르고 있고 그중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출자전환 등은 계획대비 18%에 불과한 것을 집계되고 있다. 중견그룹의 워크아웃은 잘 진행되는 반면 64대 주채무계열의 기업의 워크아웃은 잘 진행되지 않는 것은 채권단의 자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풀이. 금융연구원의 이동걸(李東傑)연구위원은 “지금이라도 주채권은행이 워크아웃 기업의 상황을 점검해 과감한 추가 채무재조정과 퇴출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시장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불투명하게 진행되는 것도 문제다. 기업개선약정이 시장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그런 장치가 전혀 없다는 지적.

금융연구원은 최근 금감원에 개별기업의 채무재조정 현황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처럼 개별 워크아웃 절차에 대해 정부나 채권단이 비밀주의를 고수함에 따라 시장이 해당기업의 건전성과 워크아웃 성공을 판단한 근거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워크아웃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는 것.

▽지배구조 개선에 달렸다〓이사회 중심경영이 잘 정착된 미국의 경우 이사회 멤버의 절반 이상이 사외이사. 대개 동종업계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되는 사외이사들은 1년에 3,4차례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잘못된 의사결정에 참여한 것이 드러날 경우 ‘최고경영자 시장’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다.

반면 국내 워크아웃 기업들의 경우 사외이사들이 전문성이 떨어져 대주주나 최고경영자의 독단을 견제하기 벅차다는 평가. 기업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경영관리단은 의결권이 없다.

금감원과 기업구조조정위원회는 이에 따라 채권단이 선임하는 경영평가위원회의 활동을 대거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개선을 서두르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현행 경영진은 반기에 1차례 경영평가를 받으며 그 결과에 따라 해임권고를 당할 수도 있다.

또 사외이사는 분기별로 평가를 받으며 은행의 경영관리단장도 채권단으로부터 반기에 1차례씩 평가받도록 돼있지만 문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외이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도 없다.

<박래정·박현진기자>ecopark@donga.com

◇기업정리제도 어떻게 다르나◇

부도위기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키는데는 크게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법정관리, 화의 등 3가지 방법이 있다.

▼워크아웃▼

주채권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이 해당기업과의 자율적인 협약에 따라 부실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해 회사를 살리는 것.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등으로 외부기관의 도움만 받으면 쉽게 회생할 수 있을 때 유리하고 법정관리에 비해 의사결정이 빨리 이뤄지는 것이 장점이다.채권단이 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 대상기업을 통보하고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총채권액 기준 75% 이상 승인을 받으면 된다.

이후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한 실사기관이 자산부채 실사작업을 벌이고 실사결과를 바탕으로 채권단이 원리금탕감 및 상환유예 출자전환 등을 포함한 기업개선계획안을 마련, 총채권액 기준 75% 이상 승인을 받으면 효력이 발생한다. 해당기업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인원 및 조직축소와 유휴자산매각 감자(減資) 부실경영진 퇴진 등의 조치를 취한다.

▼법정관리▼

법정관리는 일단 회사가 부도가 난후 회사와 주주(지분율 10% 이상) 채권자(총자산 10% 이상)가 법원에 신청하고 법원은 회생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14일 이내에 재산보전처분결정을 내린다. 처분결정이 내려지면 회사의 채권채무가 동결되고 법원은 채권단과 협의해 법정관리인을 선임한다. 만약 법원이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회사는 곧바로 청산절차에 들어가 회사자산을 매각해 채권순위대로 채권자에게 배분한다.처분결정이후 법원이 선임한 조사위원은 기업실사작업을 벌이고 신청후 3∼5개월후 재판을 통해 법정관리 및 화의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법적절차에 따른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단점.

▼화의▼

법원을 통하지 않고 기존 경영진이 채권자와 일일이 정상화에 필요한 조치에 대한 합의를 얻어내는 것. 채권단간 이견조정이 너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려 최근에는 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워크아웃은 넓은 의미에서 사적화의에 해당된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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