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號 자동차분리후 진로]'3M체제' 안착도 불투명

  • 입력 2000년 5월 27일 01시 22분


정주영 명예회장 일가가 주도해 온 현대그룹의 지배구조가 중대한 기로를 맞고 있다.

정명예회장의 당초 구상은 몽헌(夢憲·MH) 몽구(夢九·MK) 몽준(夢準) 세 아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맡기는 것이었다. 특히 몽헌에게 가장 많은 힘을 실어주어 사실상의 후계자로 키우고 몽구에게는 자동차를 그리고 몽준에게는 중공업을 각각 넘긴다는 계획 아래 승계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건설의 유동성 문제가 터지면서 이같은 구상이 과연 그대로 관철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지배구조개선에 노력하고 있는 정부가 구제금융을 해 주면서 종전의 상속구상을 그대로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용근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한두 사람이 좌지우지하도록 되어 있는 황제식 지배구조가 화를 불렀다"면서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지배구조를 혁신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도 재무구조 개선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현대로서는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지배구조개선에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우선 정명예회장 경영 체제가 당초 예상보다 빨리 종식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측의 요구에 따라 정명예회장은 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주식을 모두 팔았으며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정명예회장의 주식매각은 물론 세 아들 체제를 전제로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자 건설 상선 증권 등 22개 계열보유주식을 완전히 매각함에 따라 최대 주주가 자동적으로 MH에게 넘어갔다.

이와 함께 MH가 이끄는 계열사들은 자동차 관련 보유주식을 대거 매각해 MK의 자동차 지배는 더욱 공고해졌다. 정명예회장이 자동차 최대지분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경영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기로 약속, 사후의 상속권도 MK쪽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중공업과 미포조선 등 중공업 부문은 조만간 몽준회장에게 넘어간다. 몽준회장은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대주주로 남고 전문경영인이 중공업그룹을 이끌 예정.

그러나 정부와 은행이 요구하는 재무구조개선을 수용하자면 상당량의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경영권 판도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시장 안정이 늦어지거나 투신의 부실이 더욱 확대되면 문제는 자못 커진다. 이를 진정시키자면 주식의 대량 매각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지배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릴지도 모른다.

현대는 최근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자의 난'으로 위기를 자초한데다 신뢰의 상실과 자금관리 실패가 겹쳐 있다.

특히 몽헌회장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급한 현안은 발등에 떨어진 현대건설의 자금난. 몽헌회장은 25일 금강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투신이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면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 유보적.

몽헌회장은 또 경제논리보다는 정명예회장의 개인의지가 반영된 대북 투자 문제도 실리를 찾는 남북경협으로 전환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제적 실익이 없는 현대의 대북 투자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현대자동차 소그룹도 자금사정은 MH 계열보다 낫지만 현안이 산적한 상태.

연간생산량 270만대 규모의 현대 및 기아자동차가 현대그룹이라는 배경 없이 과연 세계시장 재편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하기 때문. 세계 유수업체와 제휴할 것인지, 포드나 GM과 손을 잡고 대우자동차 인수에 성공해 연산 400만대를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변수이다.

이와 함께 국내시장에서도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프랑스 르노와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동안 사실상 내수시장을 독점해와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외국 자동차가 본격 상륙하면 힘겨운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앞으로 현대의 운명은 정씨 일가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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