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 불법로비]한국의 로비관련법 문제점

  • 입력 2000년 5월 10일 18시 46분


대형 로비 의혹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우리나라도 이제는 로비를 양성화하는 법률을 만들거나 최소한 현행 법률을 현실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 중 ‘로비스트’의 활동을 규제하는 대표적 조항은 ‘고속전철 로비의혹’ 사건으로 10일 구속기소된 호기춘씨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죄. 이 조항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

김종훈(金宗勳)변호사는 “로비의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는 순간 로비스트는 이 조항을 어긴 범법자가 되지만 현행법상 알선(로비)을 청탁한 쪽을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린다 김’의 경우도 ‘백두사업’과 관련해 미국 E 시스템사와 사례금(에이전트 피) 계약을 했었다면 그 순간 알선수재죄를 저지른 셈이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법률은 로비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금지는 결국 음성적인 뒷거래 관행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의 경우 1946년 제정된 ‘연방로비규제법(FRLA)’은 우리와 달리 ‘로비의 양성화와 투명화’를 유도하는 법률로 평가된다. 95년 제정된 ‘로비명세법(LDA)’은 이 법을 보다 구체화해 6개월간 5000달러 이상을 받은 로비스트나 2만달러 이상을 수임한 로비회사는 등록을 의무화하고 사무실위치 로비보수 계약기간 등을 1년에 두 차례 당국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썩지 않으려면 투명하고 깨끗해야 된다는 입법취지다. 미국에서는 외국 정부나 기업을 위해 일하는 로비스트도 법무부에 등록을 해 양성화하고 있다.참여연대 이태호(李泰鎬)국장은 “로비를 양성화하는 ‘로비스트 등록법안’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책을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로비스트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12일 ‘음성로비 차단과 로비 양성화를 위한 방안’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경실련 이석연(李石淵)사무총장도 “우리나라에서도 이익단체들이 사실상 로비활동을 하고 있지만 절차 제한범위 등이 법제화돼 있지 않아 ‘밀실로비’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반면 로비법을 만들기 전에 우리 사회에 ‘반부패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양인석(梁仁錫)변호사는 “국민감정상 뇌물과 로비가 잘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로비 양성화법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준법의식을 정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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