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재경 "구조조정본부 모두 없애라"…주요그룹에 주문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5분


현대그룹의 전근대적 가족경영이 사회적 비난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정부가 개혁 전선을 재벌 전체로 확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이번 공세는 재벌측 대응여부에 따라 소수주주권 강화 등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본부 해체를 기정사실화한 현대에 이어 삼성 LG SK 등 주요 재벌들도 획기적인 계열사 자율경영과 주주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개선안을 잇따라 내놓을 전망이다.

▽‘다른 재벌도 없애라’〓이헌재(李憲宰) 재경부장관은 30일 현대그룹의 구조조정본부 해체 움직임을 환영하면서 “다른 재벌들도 유사한 기구를 조속히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장관은 또 “재벌들은 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으면서 비서실 등 사실상의 지배조직을 해체하기로 약속했다”고 못박아 채권단을 통해서도 재벌들에 압박을 가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현재 재경부와 법무부는 기업지배구조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법무법인 등에 의뢰한 상태. 한 관계자는 “단독주주의 대표소송권과 주주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업구조조정 약속 지켜라’〓이용근(李容根) 금융감독위원장은 29일 오전 서울 롯데호텔로 현대 삼성 LG SK 등 4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불러 현대그룹 회장 선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벌들의 약속 불이행을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본부장들에게 “정주영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을 앞으로 누가 맡는다’고 지명한 것은 법에도 맞지 않고 국민들도 원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우리의 구조조정 의지가 훼손됐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 위원장은 이와 함께 재벌들의 수익성엔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항공 유화 철도차량 분야의 구조조정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철도차량의 경우 채권단 실사과정에서 부실자산이 발견돼 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고 항공은 외자유치가 지지부진한 상태. 유화는 일본 미쓰이물산과의 외자유치 협상이 결렬되면서 현대유화 삼성종화 등이 독자회생을 시도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와 별도로 다음 달부터 상장협회 등록법인 등은 이사회 구성이나 사외이사 현황, 감사위원회 권한과 책임 등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의 준수여부 등을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달부터 5월15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12월 결산법인의 올 1·4분기(1∼3월) 보고서와 다음달 중 제출되는 유가증권신고서가 그 첫 시험대상.

▽재벌 움직임〓현대그룹은 31일 오전 정몽헌회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구조조정본부와 경영자협의회 해체를 밝힐 방침이다. 현대에 이어 SK그룹도최 태원회장의 지시로 구조조정본부 해체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벌들은 여신제재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 손병두(孫炳斗)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구조조정본부를 대안도 없이 해체하는 것은 문제”라며 “해체하지 않았다고 해서 금융제재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박원재·박래정·임규진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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