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재계 빅딜 지원요구는 무리…정부지원 선행돼야』

  • 입력 1998년 9월 4일 19시 29분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권이 5대 재벌의 사업구조조정에 대한 금융지원 요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부채탕감 출자전환 만기연장 등 재계의 요구에 대해 금융계는 “어차피 하기로 했던 일을 하면서 가뜩이나 경영난에 허덕이는 금융기관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정부의 재정지원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감위〓재계가 사업구조조정을 ‘주고 받는’식의 이른바 빅딜이 아니라 합작법인 신설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의구심에 가득찬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합작을 한 뒤 새로운 경영자가 어느 쪽에서 나올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할지 불분명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금감위는 △기존설비 중 과다설비를 반드시 처분하고 △기업주 종업원 주주 채권금융기관 등 이해당사자들이 적절하게 손실을 분담하고 △사업구조조정 후에 우량기업이 돼야 한다는 세가지 원칙을 충족시킬 때만 금융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위는 5대 재벌에 사업구조조정의 시한과 절차 등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금융권〓제일은행 관계자는 “재벌들이 요구한 것은 은행의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이자가 나오던 여신을 이자가 없는 출자로 전환하는 경우 줄어드는 은행의 수익은 누가 책임지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만기연장시 금리인하 요구에 대해서도 “은행들이 해외에서 연 20%가 넘는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이 요구하는 대로 연 11.5%(우대금리)에 연장을 해준다면 재벌을 위해 예금자들을 손해보게 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조흥은행의 한 임원은 “출자전환을 한 뒤 은행이 갖게 되는 지분을 정부에서 매입해야 하며 재벌들도 합리적인 금리 수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한다는 기업에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담당임원이 ‘나도 아직 모른다’고 말하더라”며 “앞뒤를 제대로 재보지도 않고 허둥지둥 발표한 이번 사업구조조정이 제대로 추진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상철·이용재기자〉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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