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銀」/동화銀 인수공방]본점집결 장기농성 준비

  • 입력 1998년 6월 29일 19시 53분


28일 밤부터 서울 세종로 동화은행 본점에서 농성에 들어간 서울 경기지역 동화은행 본점 및 지점 직원들은 29일 오후 2시경 물과 쌀을 본점 안으로 들여갔다. 농성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이에 앞서 은행감독원(10명)과 신한은행(40명) 직원들로 이뤄진 인수팀과 동화은행 직원 대표가 고용승계 보장과 특별퇴직금 지급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28일 밤▼

비상연락을 받고 서울과 경기 지역 1백13개 지점 직원들이 본점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28일 오후 8시경. 이들은 노조의 지침에 따라 지점 금고와 출입문 열쇠를 갖고 속속 모여들었다.

간편한 복장의 지점 직원들은 지상 1층 복도에서 농성중인 5백여명의 본점 직원들과 합류했다. 중앙의 미닫이문과 오른쪽 회전문은 탁자 의자 등으로 만든 바리케이드에 막혀 있었다.

삽시간에 1천4백여명으로 불어난 본점과 지점 직원들은 오후 8시15분경 ‘경기은행에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8시40분경 한 직원이 건물 안내표지판중 지하1층∼지상8층의 동화은행 명패를 떼어내며 “‘점령군’이 전산실을 알아서 찾아가라는 뜻”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농성장은 후끈한 열기 속에 구호와 노래로 가득찼다.

8시55분경. 6층 중소기업지원실에는 노조가 제작한 팩스 지시문인 ‘투쟁속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신문지와 담배꽁초가 곳곳에 쌓여 있는 사무실 안에는 직원 10여명이 모여 “대마불사다” “실향민이 과거 여권을 지지한 데 대한 보복이다” “얻을 것도 없지만 잃을 것도 없다”는 등의 얘기를 나눴다.

9시 55분경에 4층 전산실 문을 두드리자 직원 한 사람이 나와 신분을 물어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동행한 직원은 “이 안에서는 지금 50여명의 사수대원들이 퇴직금 정산작업을 하며 전산장비를 지키고 있다”며 “전산 자료를 망가뜨리는 등의 어리석은 자살행위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노조는 ‘범법을 조장하는 선동은 우리의 생존권 투쟁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하고 노조의 투쟁속보 행동지침을 따를 것. 무책임한 전산실 파괴, 채권서류 소각 등 범법에 절대 참여하지 말 것(투쟁속보1)’ 등을 지시해 놓았다.

10시반경. 10분간 휴식후 다시 시작된 집회에서 한 직원이 “김대중(金大中) 비자금 문제를 터뜨리는 기자회견을 하자”고 제의하는 등 분위기가 한때 격앙되기도 했다. 농성장은 전직원이 두패로 나뉘어 1시간씩 교대로 지켰다.

11시경부터 차장 30여명이 8층 강당에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향후 행동방향에 대해 가급적 노조와 협력하기로 결의했으나 특별퇴직금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직원들은 통상퇴직금에다 2월 명예퇴직자들의 퇴직금에 준해 14∼22개월치 봉급에 상당하는 특별퇴직금과 회사의 자구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반납한 보너스 300%를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29일▼

0시부터 오전 4시까지 8층 강당에서 지점장회의가 열렸다. 특별퇴직금 지급 문제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참석자들은 모두 1백20억∼1백40억원에 달하는 특별퇴직금 지출이 현행규정상 불법인데다 국민 여론에 반한다고 판단해 이 문제를 29일 이후 다른 퇴출은행과 보조를 맞춰 인수은행 및 금감위측과 협상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농성장은 새벽 내내 노래와 구호로 떠나갈 듯했다.

오전 7시경 은행감독원과 신한은행 직원 60명으로 이뤄진 인수팀이 동화은행 본점 앞에 도착했으나 동화은행 직원들이 은감원 직원 10명만 진입을 허용하고 인수 직원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가까스로 은행 안으로 들어간 인수팀은 동화은행 임원들이 전날 저녁에 본점에서 빠져나간 뒤 출근하지 않아 인수 의사조차 전달하지 못했다.

노조측은 ‘가능한 한 농성을 장기화해 인수팀에 비폭력 비협조로 맞서되 물리적인 충돌이 우려될 때는 일단 각자 귀가한 뒤 이북 5도민들로 이뤄진 주주와 다른 퇴출은행 직원들과 장기적인 장외투쟁을 벌여나간다’는 방침을 정해둔 상태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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