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극복하자]이현재/이제는 행동에 나설때

입력 1998-01-03 20:28수정 2009-09-2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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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자에 따라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국가적 시련을 6.25이래 초유의 일이라 말하고 있다. 국민의 심리적 충격의 질량(質量)을 감안하면 과장된 수사(修辭)라고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 권고 내용이 가혹하다는 평을 하는 사람이 많으며 심지어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모두 한국의 개발연대적(開發年代的)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이에 대해 우리가 자칫 원군(援軍)을 얻은 양 자위(自慰)해서는 안된다. 혹자는 한보와 기아사태가 매끄럽게 처리되었더라면 현재의 위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이를 모면하였다 하더라도 한국 경제의 생리적 치부(恥部)가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결국은 훨씬 더 큰 시련을 겪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번 경제위기는 무엇보다도 자율적 통제능력을 상실한 한국의 정치 경제 및 사회에 대해 심각한 경종을 울렸으며 타의(他意)에 의해 경제발전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강요받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정부감독을 소홀히 한 정치권의 책임, 정책의 생명인 투명성(透明性)과 시의성(時宜性)을 상실하고 위기관리능력의 빈곤을 노정한 정부의 행정적 책임, 기업의 방만한 경영책임, 무절제한 소비에 탐닉한 가계(家計)의 책임을 우리 모두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겸허한 반성 위에 모든 국민이 스스로를 개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선 정치권과 정부가 솔선수범하여야 할 것이다.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문제는 ‘주는’ 경제계보다도 ‘받는’ 정치권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다. 마침 난국속에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새 대통령은 정치적 입장을 초월하여 투명하고 도덕성 있는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기 바란다. 정부도 스스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을 통하여 효율성을 제고하고 정책과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총리나 경제부총리의 점검과 조정기능의 강화가 요청된다. 기업은 소유경영에서 전문경영 체제로 변신해야 한다. 또한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경쟁력있는 부문을 전문화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의 사활이 여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관계는 수직적 피라미드 관계를 탈피하여 네트워크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소비풍조에 대해서는 더 말할 여지가 없다. 한국사람만큼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돈을 마구 써댄 국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점에 대해서 소비자들은 심기일전의 자각이 필요하며 정부차원에서도 개방체제의 틀안에서 가격정책과 조세정책 등을 통해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경제 주체들의 이러한 자각과 변신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의 틀을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 IMF의 정책 권고는 대부분 우리가 스스로 이미 했어야 할 일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출범 때도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각오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구두선(口頭禪)처럼 되어버려 금세 희석(稀釋)되고 말았다. “섣달 그믐날에 한 사람의 결심이 제야(除夜)의 종소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라지기 쉽다”고 한 영국의 수필가 가드너의 말은 논의만 무성하고 실천이 뒤따르지 않았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다. 책임론을 앞세우기 전에 소박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상호협조하여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명제라 하겠다. 우리는 다행히 그동안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쌓아온 귀중한 잠재력이 있다. 실의(失意)만 있는 곳에는 분발이 있을 수 없다. 굳건한 의지와 진지성을 가지고 우리의 잠재력을 활용하여 역동적으로 임한다면 빠른 시일안에 현재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현재 <학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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