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 비상경제대책위가 25일 밤 2차 긴급회의에서 은행간 인수합병(M&A)에 한해 우선적으로 정리해고를 인정키로 한 것은 당장 「발등의 불」부터 꺼야한다는 시급한 상황인식에서 나온 결정이다.
국제적 신인도 추락의 1차적 원인이 금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부실대출에서 비롯됐고 그 처방도 금융기관의 「대폭 수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 휴버트 나이스 IMF실무단장은 26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를 만나 『한국의 외환위기는 기본적으로 금융 사이드에서 촉발됐다』며 「현명한 처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의견은 이미 비상대책위에 전달돼 있었다. 이에 따라 비대위는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신속한 조치를 국제사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은행간 인수합병시 정리해고를 인정해줘야 국내은행간은 물론 외국자본의 국내 부실은행에 대한 인수합병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긴급처방」은 당장 노동계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제의 본격 도입을 예고하는 서막(序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 비대위는 『(정리해고는) 노사(勞使) 상호간 이해 속에서 추진할 것』이라며 일방적인 처리는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정리해고제의 조기시행 문제는 우선 노 사 정 공동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동계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 해법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비대위는 기업의 고통분담 조치도 함께 추진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IMF와의 협약사항인 △연결재무제표 의무화 △상호지급보증 규제 등의 실시를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비대위가 세계의 주요 민간금융기관에 사절단을 파견, 「신디케이트 론(협조융자)」을 요청키로 한 것은 민간부문에서의 신인도 회복을 위한 조치. IMF협약 이행 등을 통해 공공부문의 신인도를 회복한만큼 이제는 세계 민간은행의 문을 두드린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향후 비대위의 활동은 한국경제의 구조개혁과 체질개선을 위한 청사진 마련작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간의 「신속대응」조치를 통해 한 고비의 위기를 넘긴 이상 앞으로는 국제금융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전반적인 개혁청사진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김용환(金龍煥)자민련부총재는 『IMF체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철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