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경제 향후전망]재경원 『낙관』 민간硏 『비관』

  • 입력 1997년 12월 5일 20시 23분


미셀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총재와 임창열(林昌烈)부총리가 「양해각서」합의를 발표한 지난 3일 이후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사에는 분노한 국민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두달여 동안 정부와 중앙은행은 얄팍한 외환보유고의 실상을 숨기면서 외국자본들과 비밀접촉을 벌여왔다. 초라한 우리 경제력의 실체가 IMF구제금융 형태로 확인되면서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느냐』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는 것. 그러나 누구를 탓하느라 보낼 시간여유가 없다. 당장 코앞에 성큼 다가온 물가폭등 고금리 대량실업의 위기는 국민을 쓰라린 내핍경제로 내몰고 있다. IMF 요구는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있다. 외국언론들은 자국 국민의 세금으로 5백50억달러라는 거액을 빌려주는 만큼 한국이 이행조건을 잘 지키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문건(鄭文健)상무는 『IMF 요구의 핵심은 일단 경제침체를 무릅쓰더라도 외환보유고를 늘리라는 것』이라며 『비록 반강제이긴 하지만 우리사회의 거품을 빨리 없앨수록 치욕의 시기는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경기 과천시에 사는 가정주부 공설희(孔雪姬·38)씨. 평소 철부지로만 알았던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최근 아빠 몰래 자신에게만 살짝 털어놓은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지난 봄부터 가고싶어 했던 겨울 과학캠프(참가비 70만원)를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나선 것. 반도체 특수를 누렸던 남편회사가 대대적인 봉급삭감 방침을 발표한 뒤의 일이었다. 공씨는 그러나 『아이와 함께 「어떻게 씀씀이를 줄일까」 고민하다 보니 한가족이라는 정이 새삼스레 돋아났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중학교 교사 이모씨(37·여·서울 상계동)는 3일 캉드쉬 IMF총재의 「돈을 빌려주겠다」는 성명을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학생들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외제 운동화를 신지 말라고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않던 학생들이 요즘엔 「외제」 얘기만 나오면 금방 숙연해지거든요』 어린 학생들도 절약의 미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김혜선(金惠善·38·서울 창동)씨 가족은 최근 아예 라면을 3박스나 샀다. 두주 전에 주말 외식을 하지 않기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 김씨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자라온 자식들에게 어렵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주말 한두끼는 라면으로 해결할 작정』이라고 설명했다. H병원 전문의를 남편으로 둔 정모씨(31·서울 청담동)는 내년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딸아이의 유치원 4분기 등록을 포기, 59만5천원을 아꼈다. 정씨처럼 마지막 분기 등록을 포기하는 엄마들 때문에 요즘 유치원들은 원생 수가 크게 줄었다. 살림을 꾸리는 주부들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아니다. 선경건설의 임모과장(37)은 최근 입사동기들과 『양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말자』고 약속했다. 같은 회사 황목근씨(30)는 「내핍 의지를 스스로 다지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명일동에서 삼성동 사이를 출퇴근하는 고광석(高光奭)씨는 최근 한동네 사는 같은 회사 직원과 번갈아 차를 태워준다. 모든 승용차 운전자가 고씨처럼 2인1조 카풀을 하면 연간 5억달러가 절약된다. 쌍용건설 장동립(張棟立)사장은 지방 출장시 으레 호텔에서 묵었으나 지난 2일 진주현장 방문 때는 현장 숙소에서 잠을 자고 간이식당에서 두끼 식사를 해결했다. 삼성카드 이경우(李庚雨)대표이사 등 전 임원들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출판사 사장 권모씨(51)는 아내에게 하루에 새 반찬을 한가지만 만들 것을 주문했다. 서울 강남의 한 정부 부처에 터를 잡은 구두미화원 김모씨는 『IMF총재가 TV에 나온 뒤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영 무거워졌다』며 『손님이 줄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국민의 초긴축은 불안심리를 반영한다. 금융기관 돈 인출사태가 속출하고 떠다니는 「살생부」로 직장 분위기는 흉흉해지고 있다.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 등 장치산업 위주의 우리 경제에선 구조조정의 부담은 공장 등 하드웨어가 아니라 인력 부동산 등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한상춘(韓相春)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서비스산업 비중이 높았던 멕시코와 우리는 고통분담의 양상이 크게 다를 것』이라며 『위기극복의 가장 주요한 주체인 국민이 납득할 만한 솔직한 청사진을 정부가 하루빨리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래정·이희성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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