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윤건영/경제위기 극복의 길

  • 입력 1997년 11월 19일 20시 04분


아시아의 금융불안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금융붕괴 가능성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오랫동안 금융실명제의 무력화를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호도하고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큰 부도유예협약제도를 검정과정도 없이 도입해 놓고 자랑으로 삼아왔다.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의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는데도 강건너 불보듯 우리는 괜찮다고 주장하며 한국은행과의 밥그릇 싸움에 열중했다. ▼ 신뢰도 회복 가장 시급 국제금융시장의 분석가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작부터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으며 한국정부의 낙관론을 의아하게 생각해 왔다. 최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한국의 금융기관이 골수까지 썩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결국정부의 낙관론은 대국민용이었을 뿐 처음부터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제 김영삼 대통령은 재경원장관 통산부장관 경제수석을 바꾸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국민과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리고 새 정책을 과감하고 실효성있게 추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경제팀의 재편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근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금융위기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우선 대통령도 경제팀의 적극적인 일원이 돼야 한다. 은행과 종금사의 부실을 예방하는 소임을 맡고 있던 공직자들은 전원 교체해야 한다. 다수의 은행이 부실화되고 종금사들이 엉터리 영업으로 국가경제를 흔들어도 경보음 하나 울리지 못한 감독기관의 책임자들이 계속하여 같은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국민의 눈을 가리고 사사로운 이권다툼에 몰입한 공직자도 바꿔야 한다. 그들의 교체 없이는 위기극복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와 효과적인 정책집행을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의 사랑, 국제금융시장의 신뢰, 한국경제의 미래도 생각할 수 없다. 현시점에서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응급처방을 쓰더라도 시간을 벌어가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단기간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행과 경제원리에 부합되는 고급정책을 고안하고 이를 과감하게 추진하는 지혜와 결단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관료들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혜를 널리 수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 정권은 짧고 경제는 길다 경상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동원할 수 있는 재원만으로는 현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정부뿐만 아니라 정당과 정치인 기업 근로자 일반 국민에게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난 극복에 동참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 동시에 국민과 국제금융시장의 신뢰와 동참과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비전을 내걸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적어도 금융 재정 재벌구조 노사관계 교육 과학기술 정보통신 등 국가경쟁력 제고에 긴요한 부문에 대한 기본적인 정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김대통령의 임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는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한다. 그러나 정권의 임기와 관계없이 경제는 영원한 것이며 현 위기는 공직자의 헌신과 솔선수범, 그리고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국민들도 경제위기 극복에 적극 참여하여 힘을 보태야 하며, 특히 정치인은 현 경제위기를 정치공세의 기회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윤건영(연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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