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명제 유보」반박성명 배경]

  • 입력 1997년 11월 14일 20시 14분


정부가 재계의 금융실명제 유보주장에 이례적인 반박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정치권과 재계를 중심으로 확산돼온 실명제 폐지론을 사전에 봉쇄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들어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선 금융위기가 실명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경제회생을 위해선 실명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전경련이 문민정부 개혁정책의 상징인 실명제를 정면으로 문제삼고 나오자 정부로서도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는 해석이다. 전경련은 실명제로 인해 △민간저축률이 떨어지고 △장기저축이 줄어들며 △자금의 해외반출이 심해졌고 △차명예금들이 그대로 남아 순환하지 않으면서 시중자금난을 부추기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게다가 비자금 폭로사건으로 실명제의 비밀보장조항이 헌신짝처럼 폐기된 점도 실명제의 의미를 반감했다고 지적한다. 경제계 인사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가 공식대응하기로 한 것은 전경련 주장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보기 때문. 여기에 현재 경제위기의 원인과 관련, 재계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실명제 탓으로 돌리는데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이 섞여 있다. 재경원측은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무리한 빚경영으로 나라 경제를 거덜내 놓은 재벌들이 엉뚱한 발상이나 하고 있다』면서 흥분하고 있다. 한편 전경련은 재계의 목소리가 가장 잘 먹히는 선거철에 실명제 유보론을 들고나왔다가 정부의 정면대응을 부르자 14일부터는 말을 삼가는 분위기. 전경련 관계자는 『실명제 유보 주장은 경제가 어렵다보니 하소연하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이지 정부에 대항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면서 『더는 실명제 논쟁의 확산을 원치 않는다』고 태도를 바꿨다. 정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여론의 향배를 분석해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지하자금 양성화방안 등이 담긴 실명제 대체입법안이 사실상 이번 국회회기내 처리가 무산돼 실명제의 운명은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차기정권에서 대체입법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폐지될 가능성도 높은 실정이다. 재경원 관계자는 『실명제를 되돌리긴 어려운 만큼 차기정권에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임규진·이희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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