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에선]「小사장」이 뛰고 있다

  • 입력 1997년 10월 13일 08시 04분


손경숙(孫慶淑·46)씨는 11월 개장하는 신세계 인천점의 매장 준비로 분주하다. 디자이너 출신의 손씨는 지난 7월 신세계의 임신복 자체 브랜드(PB)인 「마더후드」 소사장으로 발탁됐다. 손사장은 새 매장을 꾸미는데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다. 임신부 고객에 적합한 주부사원을 채용하고 편안한 매장을 꾸미도록 소파와 태교음악도 준비할 생각이다. 손사장은 『무엇보다 「내 일」인 만큼 매사에 매출과 수익을 먼저 고려하겠다』고 말한다. 우리 기업 구석구석에서 소사장들이 맹렬하게 뛰고 있다. 소사장제는 지시받는데 익숙하던 월급쟁이를 권한과 책임을 가진 「경영자」로 탈바꿈시켰다. 소사장의 활약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생산성이 쑥쑥 높아지고 있다. 삼성물산 의류부문의 이병식(李炳埴·40)소사장은 최근 부천점의 신설을 현장에서 직접 결정했다. 매장 신설을 위한 결재에 걸리던 2∼3개월의 시간을 1주일로 줄였던 것. 「공룡기업」 삼성물산에는 소사장이 무려 1백73명. 상사부문에 28명, 의류 65명, 건설 80명이다. 소사장제 도입으로 결재과정이 3단계 이내로 줄었다. 소사장제가 삼성물산을 날쌘 공룡으로 만들어 「스피드 경영」을 가능케 했다. 비료제조업체인 경기화학의 장효갑(張孝甲·43)소사장은 생산라인을 넘겨받은 올 상반기에 20여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직장(職長)」으로 같은 일을 했던 지난해 상반기보다 7배 남짓 순익이 늘었다. 그는 『내 몫으로 돌아올 이익을 늘리기 위해 전보다 생산비를 줄이는데 힘쓴다』고 말했다. 제일제당 이벤트팀의 박재덕(朴在德·36)소사장은 편안한 캐주얼을 즐겨 입는다. 사무실을 얻어 독립한 뒤 정장을 입을 때 느꼈던 중압감은 사라졌다. 박사장은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있다. SK주유소 최복만(崔福萬·50)소사장은 주말점심에 고객에게 국수를 무료로 말아주고 우수종업원에게 포상금을 주는 등 각종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서비스는 월평균 2백80드럼이던 휘발유 판매량을 1천드럼으로 늘어나게 했다. 그러나 소사장제는 보완해야 할 그늘도 없지 않다. 의욕과 아이디어만을 믿고 갑자기 소사장으로 「승격」되면서 겪는 시행착오가 하나 둘이 아니다. 일부기업은 소사장제를 활용해 인원감축과 인력재배치를 노리기도 한다. 1년반 동안 소사장을 하다 과장으로 「강등」된 박모씨(39)는 『회계처리를 제대로 할 줄 몰라 무척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립 후에 본사가 회계 관리 등의 적절한 뒷받침을 해주지 않았던 것을 박씨는 지금도 아쉽게 생각한다. 소사장 경력 4년째인 윤모씨(46)도 『처음에 세금계산서 한장 끊거나 어음할인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허둥댔다』며 『소사장을 지원하는 교육체제가 확립돼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소사장을 여전히 부하직원 정도로 여기는 「고정관념」도 해결해야 할 과제. 한 중소기업은 3년전 소사장을 모집할 때 지원자가 나서지 않아 고민했다. 소사장을 맡더라도 본사가 직원으로 여기며 납품단가를 깎으려 들까 우려한 때문. 또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소사장간에 업무협조가 어렵고 사내의 많은 소사장을 한꺼번에 관리해야 하는 부문장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점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이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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