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 일반 주차장에서는 요즘 공장에서 출고는 됐지만 주인을 만나지 못한 「새 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치열한 선두다툼을 위해 각 업체가 밀어내기식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선출고」차량. 이런 차가 매월말이면 전국에 2만대까지 늘어난다.
선출고뿐 아니다. 지난 3월 완성차업체 대표들이 자제하기로 합의한 무이자 할부판매도 현재 거의 모든 차종에 걸쳐 실시되고 있다.
이같은 출혈경쟁으로 인한 손실은 업계 전체로 월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겉으로는 극심한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단순 경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동차산업 구조 조정을 앞두고 각 업체가 「먹느냐」 「먹히느냐」의 갈림길에서 벌이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鄭悳永(정덕영)한국자동차공업협회 부회장은 『출혈경쟁으로라도 시장을 장악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과당경쟁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과포화 판정을 받은 승용차 내수시장에 올연말과 내년초 쌍용과 삼성이 가담하면 제살깎아먹기식 과당경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또 99년에는 일본 자동차의 수입이 기다리고 있다. 생산설비 증설경쟁도 치열하다. 올해 국내생산능력은 4백9만대 수준으로 지난 90년 1백79만대의 두배를 훨씬 넘었다. 업체들의 계획대로라면 2002년에는 6백80만대 수준으로 지금보다 70%가량이 더 늘어나게 된다.
이쯤되자 완성차 업체들은 부동산매각 한계사업정리 등을 통해 과감한 사내 구조조정을 꾀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시가 8백억원대에 이르는 도곡동사옥을 계열사에 매각하기로 했고 트레일러 등 적자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기아자동차도 다음달초 「기아자판」을 설립, 판매부문을 독립시키고 올해 수출목표를 지난해 대비 27% 늘린 41만대로 정하는 등 내수보다는 수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중국에 있는 푸조공장을 인수, 중국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며 대우자동차는 완성차 수출보다는 부품 수출과 현지생산공장을 늘리는 방향으로 해외공략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피나는 생존경쟁과 함께 해외시장에서의 부품공동사용방안 논의 등 공멸을 피하기 위한 업체간 공조분위기도 조성되고 있어 성과가 주목된다.
〈이영이·박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