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신풍속도 백태]컴퓨터결재『「옛것」은 버려라』

  • 입력 1996년 12월 15일 20시 14분


「李英伊·林奎振기자」 서울역앞 남산비탈길에 자리잡은 제일제당.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인 이 회사 건물에는 열쇠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모든 출입문의 자물쇠를 전자감응식 장치로 바꿨기 때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주변에 쓰레기통이 보이질 않는다. 컴퓨터로 전자결재를 하는 등 사무자동화가 이뤄지면서 각종 폐기서류나 사무용품이 크게 줄었다.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층에 10여개에 달했던 쓰레기통이 3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동타자기와 먹지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정도로 기억되고 보관문서철과 편지봉투도 찾아볼 수 없다. 디스켓이 각종 문서내용을 보관중이고 전자메일이 글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울 태평로1가 삼성본관. 사내방송과 사내컴퓨터통신이 활성화되면서 복도에 걸려있던 게시판도 사라졌다. 인사철이나 각종행사를 앞두고 게시판앞에 모여서 각자 정보를 주고받던 풍경도 이젠 추억속의 옛일이다. 컴퓨터 결재의 시행과 함께 까만 표지의 결재판도 자취를 감췄다.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상사에게 호통받는 만년과장의 처량한 모습도 덩달아 사라졌다. 사원식당에는 요즘 식권을 들고 오는 직원이 없다. 전국 계열사 어느 사원식당에서든 전자신분증만 제시하면 자신이 먹은 음식값이 월급에서 자동으로 공제된다. 전자신분증은 보안을 위해 전자감응장치를 설치한 사무실문을 통과할 때도 필요하다. 몇년전만 해도 1인당 월평균 3개를 쓰던 볼펜이 요즘엔 1개도 안쓴다. 연필이나 지우개, 잉크와 펜도 절반정도로 소비량이 감소했다. 대우그룹은 아예 종이를 활용한 업무보고를 금지하고 있다. 모든 연락 사항은 사내 전자메일을 이용하라는 것. 임원용 신문스크랩도 전자메일로 대신하고 있다. 「구닥다리」를 내쫓고 책상위를 점령한 물건들은 컴퓨터와 팩스, 사내 케이블 TV 등 전자제품들. 이같은 사무자동화로 사무실 풍속도도 많이 달라지는 추세다. 우선 직원들의 활동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일일이 상사나 동료사원을 만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칸막이가 쳐진 공간속에서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다 보면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출근했는지를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까만 결재판을 고집하는 제일제당 K이사는 『편리함을 좇는 사무자동화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해선 자주 얼굴을 봐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구석기 유물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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