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러시아 ‘아시아 주인’ 꿈 300년 실패사

  • 동아일보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크리스 밀러 지음·김남섭 옮김/616쪽·3만4000원·너머북스


“유럽에서 우리는 들러리이자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서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1881년 독자들에게 러시아의 미래를 이렇게 전망했다. 유럽에서는 늘 주변부에 머물렀던 러시아가 아시아에선 주도적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러시아가 지난 300년 동안 동아시아를 향해 품어 온 야망과 반복된 좌절의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학계에서 주목받는 국제사가로, 반도체 개발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을 다룬 ‘칩워(Chip War)’의 저자가 썼다.

표트르 대제부터 블라디미르 푸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지도자들은 수차례 ‘아시아로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귀결됐다. 저자는 그 원인을 러시아가 끝내 벗어나지 못한 ‘유럽적 렌즈’에서 찾는다.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유럽에 놓인 국가 구조 속에서, 아시아는 지속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고 관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는 것. 과도한 낙관주의로 출발한 아시아 전환은 물류 현실, 엘리트 내부의 이견, 군사적 패배 앞에서 번번이 꺾였다.

책은 러시아가 아시아로 발돋움하려던 순간들을 정밀하게 보여 준다.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하와이까지 확장됐던 러시아의 태평양 제국 구상은 물론이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교통의 중심이 되려 했던 19세기 말의 낙관 등을 담았다. 공산주의 확산을 매개로 아시아 패권을 모색했던 스탈린 시대의 전략까지, 러시아의 동진사는 기대와 좌절이 반복된 역사였다.

저자는 푸틴 정부의 ‘신동방 정책’ 또한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북극항로 개발이 경제적 잠재력은 크더라도 막대한 인프라 비용과 환경적 위험이라는 ‘과거의 실패 패턴’을 반복할 소지가 있다는 예측이다. 물론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 실패담만 비추는 책은 아니다. 왜 러시아가 반복해서 같은 꿈을 꿨는지, 그리고 그 꿈이 왜 늘 유럽으로 되돌아갔는지를 차분히 설명한다. 오늘날 급변하는 유라시아 지정학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갖도록 돕는다.

#러시아#아시아#신동방 정책#태평양 제국#시베리아 횡단철도#푸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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