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도 쓰냐는 질문을 받으면 자주 했던 답변이 있었습니다. 제가 쓴 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고, 쓰면 쓸수록 느는 것 같아서요. 이 두 개면 어떤 대양도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보면 무척 성긴 문장 같습니다. 사실 읽기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끔찍한 글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헤엄칠 수 있던 건, 저 치기 어린 문장이 가진 부력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바다를 건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잠깐 전화를 받고 섬에 도착했고요. 섬에서 들리는 축하는 얼떨떨합니다. 신기하고, 눈부시고, 불안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헤엄쳐 왔다는 격려만큼은 소중해서 껴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긴 헤엄을 떠올리면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갑니다.
이 글은 대양에서 만났던 고마운 분들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뼈 같은 글을 만져준 혁우와 현승, 재미없음과 소설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해준 이갑수 선생님, 그리고 재미없는 글을 읽어준 고마운 문우들. 그 시선들이 밤바다의 별처럼 소중했습니다.
제 소설 쓰기는 늘 빚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을 함께 건너온 총문학연구회 친구들과 민규 시온 석화 재인 성우 신엽 미르, 글의 기쁨을 알려준 전영애 선생님, JD, 혁, 해권 재용, 독모독모 동료들까지. 함께 유영한 이들의 몸짓이 떠오릅니다. 부족한 글에서 가능성을 길어 올려 준 심사위원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보다 뜨겁게 좋아해 준 충주의 서태원 박문자 님과, 사랑하는 법을 사랑으로 알려준 김상민 아빠와 김은주 엄마, 김도연 동생네에게는 푸른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삼촌과, 친척들과, 팀원들과, 미처 명명하지 못하는 고마운 이들에게도요.
그리고 헤린. 바다를 품은 당신에게는 가장 깊고 넓은 파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삶을 쓰겠습니다.
△199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산업공학과(주전공) 및 국어국문학과(부전공) 졸업, 변리사
외계서 온 별똥별 같은 소설, 또 다른 영역 열기를
●심사평
성석제 씨(왼쪽)와 최윤 씨.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다. AI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소설이 인간다운, 인간적인, 인간의 삶과 삶의 다채로운 국면을 정련해 전달함으로써, 사람과 사람 사이에 훈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본심에 진출한 12편의 작품 심사에 임했다.
‘이해의 이해’는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럽다. 사소한 실수가 거의 없다는 점도 호감이 간다. 이 작품만 가지고는 아직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충분치 않아 보이지만, 언젠가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삶의 역사를 이야기해줄 것이라 예측하게 만든다.
‘루빅스 큐브’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선이 화자가 처한 곤란한 상황, 소품과 어울려 간단치 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난감하고 불안한 상황을 드러내는 다채로운 묘사와 ‘(성공의) 공식’이 아닌 끈기와 시도(노력)를 큐브 맞추기에 연결시키는 이야기 방식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에는 곤란한 상태에 빠진 현재와 ‘과거의 선택과 행위’에서 나온 질문만 있을 뿐 기승전결 방식에 따르는 해답이 없다. 독자가 답을 찾아냈다고 여기는 순간, 이 작품은 오히려 의미를 잃고 쭈그러들지도 모른다. 외계에서 날아든 별똥별처럼 이상하고 낯선 이 작품이 우리 소설의 또 다른 영역을 열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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