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이 산의 나무를 친다 해도/무슨 뜻이 있어 그런 것이겠느냐/그저 힘써 착한 일을 행해야지/천지는 원래 돌고 도는 거니까’
1802년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지은 ‘벽력행’의 한 구절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탁월한 학문과 문장력으로 관직에 진출한 다산은 초계문신과 한림학사를 모두 거머쥐는 등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1800년 정조가 승하(昇遐)한 뒤 정치적 기반을 잃었고,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에 연루됐다는 이유와 정적들의 견제가 겹쳐 마흔이 되던 무렵 강진으로 유배된다.
정조의 개혁 정치 선봉에서 거침없이 활약했던 그로서는 하루아침에 죄인 신세가 된 처참한 추락이었다. 그 역시 울분, 고통, 슬픔의 시편을 썼다. 하지만 ‘벽력행’을 쓴 이후 다산은 절망과 상실보다는 넉넉한 품과 단단한 성찰로 사유를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책상 앞에서 글만 읽는 유학자가 아니라, 들판과 장터를 거닐고 백성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실천적 지식인이 됐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에 이르는 위대한 저술의 밑그림이 모두 이곳에서 그려졌다.
실학박물관장이던 저자가 조선 후기 지성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다산의 일생을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와 시, 산문 등을 통해 면밀히 살펴본다. 느닷없는 절망과 실패를 성찰과 성장으로 전환시킨 다산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지혜와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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