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 시리즈에서 용기를 상징하는 캐릭터 ‘아자핑’. SAMG엔터테인먼트
“좋~아! 할 수 있다, 아잣!!”
어린이들이 열광하는 TV 애니메이션 ‘캐치! 티니핑’에는 다양한 감정을 상징하는 ‘티니핑’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아자핑’은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특별한 캐릭터다. 다만 그의 용기 부여 능력은 일시적이다. 지속 시간이 길지 않다는 얘기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용기가 금세 사그라드는 우리의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타인의 진실한 응원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도 찰나다. 유튜브나 종이책 너머 법륜 스님, 쇼펜하우어 같은 현인의 위로도 잠시 기지개를 켜게 해줄 뿐이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괴감으로 금세 바닥을 치는 것이 범인(凡人)의 마음이다.
얼마 전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인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 참관을 위해 찾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방에서도, 나는 무너지는 평정심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출장 업무와 무관한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전력 질주했던 과업이 좀처럼 결실을 보지 않으니 답답함이 몰려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생산성 강박’이 목을 조여오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달려도 결국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능력 때문인지, 노력 부족인지, 운이 없어선지, 자책과 원망 그 언저리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시적 응원에 기대어 간신히 숨통을 틔웠다.
독처럼 번지는 생산성 강박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전 세계 수많은 노동 인구가 ‘독성 생산성(Toxic Productivity)’에 시달린다고 한다. 고된 일을 미덕으로 여기고, 완벽함을 좇으며, 생산성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한다. 이런 독성 생산성은 자신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번아웃을 가져와 도리어 일의 지속을 어렵게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이런 강박에 완전히 잠식당하지 않고 완벽주의와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던 건 주변에 수많은 ‘아자핑’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차 탓인지, 생각이 많아서인지 밤새 뒤척이는 동안 내 인생의 아자핑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입시 스트레스로 지치던 성장기, 내게 용기를 준 아자핑은 어머니였다. “그냥 자.” 당신께서 자주, 반복적으로 해주시던 이 말은 잠을 자는 것조차 죄책감으로 여기던 내게 최고의 위안이었다. 물론 그 말을 듣자마자 곧장 이불 속으로 뛰어들진 않았지만, ‘자도 된다’는 안도감이 잠을 줄이더라도 지치지 않게 해줬다. 공부하라는 어느 채찍질보다도 나를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어머니의 큰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본캐와 부캐를 오가며 격무에 허덕이는 지금, 나의 새로운 아자핑은 남편이다. 그가 내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때려 쳐.” 언뜻 거칠어 보이지만, 시작한 일의 끝맺음을 지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내게 이보다 통쾌하고 애틋한 위로는 없다. ‘때려 쳐도 된다’는 여유가 오히려 나로 하여금 기약 없는 여정을 이어가게 한다. 물론 그도 내가 실제로 때려 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주는 것일 터다.
혁신 신약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사진은 지난 1월 13~16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나흘간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 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JP모건출장지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많게는 십수 년이 걸리는 바이오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과학자나 기업인들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지난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지에서 만난 한 바이오 기업 CEO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열정도 사명감도 물론 좋지만, 가장 도움이 됐던 태도는 ‘무덤덤함’이었다고. 안 된다는 신호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결정적인 단서가 아니라면 적당히 무시하는 것.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실패가 기본값이라는 전제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진짜 실패가 닥쳐도 큰 좌절을 겪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는 매번 다음 확률에 희망을 걸며 나아갔다.
비록 영원한 응원은 없지만
지금 우리는, 뿌리 깊은 생산성 강박이 독처럼 퍼진 시대를 살아간다. 이 독에 맞설 해독제가 더 널리 퍼지길 바란다. 서로에게 한결 너그러워지고, 스스로에게 더 담담하게 쉬어 갈 여유를 허락했으면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태반이지만, 하루하루 1인분의 밥벌이를 해내는 것만으로도 제법 기특한 일이니까. 잘해야 한다는 채찍질보다, 못 해도 괜찮다는 따뜻한 격려가 이 시대엔 더 희귀하다.
애니메이션 속 아자핑은 곤경에 처하거나 의기소침해진 이를 찾아가 잠시나마 용기를 보탠다. 하지만 캐릭터의 에너지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설정은 결국 ‘영원한 응원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내 곁의 아자핑들이 건네는 응원의 지속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잠깐의 말 한마디가 때론 누군가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스치는 순간이기에 더욱 고맙고 다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방 한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 날을 맞이한다. 긴 연휴를 끝으로 다시 달려야 하는 지금, 나의 아자핑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해독제를 건네 본다.
“그냥 자고 일어나서 해도 돼. 힘들면 때려 쳐도 돼. 아잣!!”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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